올해 영화업계는 「경제한파-정부의 지원약속-일본영화 개방-흥행성공률 상승-스크린쿼터 폐지 공방」 등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격동의 한해를 보냈다.
올초 IMF 경제한파가 본격화되면서 지난 95년 이후 영화재원의 큰 축을 이루었던 대기업 및 창업투자사들이 이탈, 제작비 충당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지난 95∼97년 연간 평균 60편을 유지하던 제작편수가 올해에는 36편으로 마감될 전망이다. 이같은 작품수 빈곤은 곧 영화산업 전반이 위축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2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영화에 대한 5백억원 지원약속이 실현되리라는 기대로 영화계가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부담」도 예상됐다. 영화계는 가까운 시일내에 일본 상업영화의 본격적인 한국상륙이 시작돼 한국영화 산업발전 및 안정화에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영화 스스로는 1할5푼대를 밑돌던 흥행성공타율을 3할대로 끌어올리면서 분전했다. 서울관객 70만명을 동원한 「여고괴담」을 비롯해 「8월의 크리스마스」 「조용한 가족」 「찜」 「투캅스 3」 등이 상반기 흥행작으로 떠올랐고, 여름∼가을시즌에도 「퇴마록」 「세븐틴」 「정사」 「처녀들의 저녁식사」 「키스할까요」 등이 서울에서만 각각 10만∼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던 것이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이는 한국영화의 토양과 질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우리영화의 미래를 낙관하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영화의 전반적인 침체와 달리 「타이타닉」으로 대변되는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들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20세기폭스는 「타이타닉」으로 서울관객 2백만명 돌파라는 전대미문의 흥행성적을 거뒀다. 이와 함께 「고질라」 「딥 임펙트」 「아마겟돈」 등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은 전국 영화관의 80∼90%를 점유할 정도였다.
특히 대작영화의 배급약속을 미끼로 「B급 영화」들의 상영까지 강요하는 등 할리우드 영화계가 한국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력도 식을 줄 몰랐다. 최근에는 20세기폭스가 한국영화 「남자의 향기」를 배급하는 등 이른바 「로컬사업」을 통해 한국영화를 직접 손에 쥐기까지 하고 있다.
11월에는 뜻밖의 「지뢰」인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제도 폐지 문제」가 터지면서 영화산업계 전반을 크게 뒤흔들었다. 미국의 강력한 통상압력으로 한국영화 산업기반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최근까지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범국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산업인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퇴마록」 「쉬리」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등 2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가 등장하면서 한국영화의 규모를 넓히는가 하면,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영화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현상을 보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특히 영화사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시절」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한 것은 영화산업인들에게 힘을 실어준 쾌거였다. 더구나 이광모 감독은 10년여에 걸친 장인정신을 발휘하고, 기획단계부터 국내시장보다는 외국을 겨냥하는 모습을 보여줘 나름대로 한국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일단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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