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8 방송계 결산 (상);총론, 케이블TV.중게유선

 올 한 해 방송계에는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다. 사회 전반에 암운을 드리웠던 IMF사태는 방송계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던 케이블TV는 꽃도 피우기 전에 IMF사태라는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렸고 「지역 밀착형 매체」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됐던 지역 민방은 출범 몇 년 만에 빈사지경으로 내몰렸다. 구조개혁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전례 없는 거품빼기로 슬림화에 나섰으나 「방송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몇년째 공전을 거듭했던 통합 방송법 제정은 올해도 「방송개혁위원회」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올해 방송계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케이블TV·지상파 방송·위성방송·뉴미디어·방송장비 등 분야별로 매주 월요일(14·21·28일자)에 점검해 본다

<편집자>

총론

 국내 방송계에서 올 한 해 벌어졌던 사건들을 되돌아 볼 때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과거 정권하에서 방송정책을 주물러왔던 공보처가 전격 폐지됐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보처 폐지와 방송규제기구인 방송위원회의 자율성 제고라는 명분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공보처를 폐지하는 대신 통합 방송법 제정 후 출범하는 방송위원회에 방송 정책권을 넘겨주는 구도를 상정, 올 4월까지는 반드시 통합 방송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공약한 통합 방송법의 국회 통과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지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보처 페지후 일시적으로 공백기에 접어든 방송정책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문화관광부가 「억지 춘향식」으로 방송정책업무를 떠맡았다.

 그러나 통합 방송법 제정이 방송위원회의 구성방식, 방송사업자간 이해 상충, 외국자본과 대기업의 방송 사업 참여 등의 요인으로 늦어지면서 정부의 방송 정책은 아주 묘한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통합 방송법 제정 지연으로 초래된 가장 부정적인 효과는 아마도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방송 정책권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았던 문화관광부는 방송분야 주요 정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새로 출범할 통합 방송위원회에 넘긴다는 발상에 가장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민방의 방송권역 확대 문제, 인천방송의 전국 방송화, 파탄 지경에 이른 케이블TV의 회생책 마련, 중계유선과 케이블TV업계간 갈등, 지상파 디지털TV 방송의 시행 여부 등 어느 현안에 대해서도 문화부는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통합 방송법 제정 지연은 방송유관 단체의 효율적인 업무 수행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방송위원회·종합유선방송위원회·방송개발원·방송광고공사·언론연구원·케이블TV협회·방송회관 등 유관기관 직원의 최대 관심사는 조직의 향방과 직원들의 고용승계 문제였다. 통합 방송법이 제정돼 방송위원회가 새로 출범하고 방송구조 개혁이 본격화되면 자신들의 신분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마당에 과연 본연의 업무 수행이 가능했을까.

 이같은 어정쩡한 분위기는 방송사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위성방송 사업자, 케이블TV 사업자 등 방송사업자들은 통합 방송법의 통과만을 학수고대했다. 아마 위성방송사업을 준비중인 업체들은 이번 방송법 지연 사태의 최대 희생자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 방송계에는 오직 논쟁만 있었을 뿐,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케이블TV.중계유선

 케이블TV 업계에 불어닥친 IMF한파는 가히 「핵폭탄」이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가입자가 늘어나기는 커녕 줄어들고 있는 데다, 케이블TV 프로그램공급사(PP)와 종합유선방송국(SO)들의 잇단 부도 등으로 얼룩진 최악의 한해였다.

 작년 진로그룹의 부도로 계열사이자 케이블TV 여성채널인 GTV가 29개 PP 가운데 첫 부도를 낸 데 이어 IMF한파가 본격적으로 불어닥치기 시작한 올해 들어서면서 다솜방송·기독교TV·CTN·동아TV 등 4개 PP가 연이어 부도를 냈고 이 가운데 동아TV는 지난 10월31일 정규방송중단이라는 사상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았었다.

 심지어 그간 「무풍지대」로 인식돼왔던 SO조차도 대전 SO가 77개 SO 가운데 첫 부도를 내는 등 전반적으로 케이블TV업계에 시련의 골이 더 깊어진 한 해로 마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케이블TV업계의 누적적자는 업체들의 눈물겨운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년 1조2천억원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블TV 3분할 구도의 한 축인 전송망사업자(NO)의 망사업 중단도 올해 기록할 만한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NO의 망사업 중단으로 망광역화작업을 추진했던 1차 SO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지만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작년 5월 사업권을 획득한 24개의 2차 SO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한전과 전송망사용계약을 맺은 이들 2차 SO는 방송국사를 준공해 놓고도 정작 방송개시에 필수사항인 전송망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PP와 SO간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는 채널티어링 문제도 올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SO측에서는 중계유선과의 가격경쟁력 확보와 가입자유치를 위해 채널선택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었다.

 실제로 IMF관리체제로 들어서면서 가입자들의 이탈이 시작되자 서울지역의 SO인 미래케이블TV가 올초부터 「보급형 채널」이라는 이름으로 채널티어링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걸쳐 30여개 이상의 SO가 이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서로 경쟁관계인 SO와 중계간의 통합문제도 올해 내내 인구에 회자된 화두 중의 하나였다. 지난 4년 동안 지루하게 끌고온 새 통합방송법 제정을 둘러싸고 번진 양측간의 통합논쟁은 당초 예상대로라면 올해안에 법안 통과와 함께 일단락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국민회의가 현재 거론되고 있는 법안들이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내년 2월로 법 제정을 미루는 대신 현재 경영난이 심각한 케이블TV업계를 우선 살리기 위해 종합유선방송법을 개정하기로 방침을 선회함에 따라 중계유선사업자들이 이에 반발, 급기야 지난 8일 비록 몇시간에 그치기는 했지만 「방송중계 중단」이라는 실력행사에 돌입함으로써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이런 와중에 중계유선사업자들이 문제를 걸고 나온 채널수 확대 논쟁도 업계내에서 눈여겨 볼만한 사항중의 하나다. 중계유선사업자들은 현재 법적으로 12개 채널만을 송출하도록 하고 있으나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철폐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반면, SO들은 「절대불가」라는 카드로 맞서는 등 채널수 확대 논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해를 넘기게 됐다.

 SO들의 녹음·녹화 전송 금지 문제도 관심을 끌었다. 당초 이 문제는 국민회의가 새 방송법 제정시 SO에게는 이를 금지하도록 명문화하기로 하자 중계유선사업자들은 자신들의 고유업무라며 찬성한 반면 SO들은 『수용불가』라고 주장,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정부·여당의 새 방송법 제정 연기조치로 다시 물밑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내년 초에 새 방송법 제정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될 경우 이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올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김위년기자 wn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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