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삼성과 대우 그룹이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빅딜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국내 가전시장에 일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의 전자산업을 대표하던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의 3두체제가 구조조정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에 휩싸여 마침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두체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사체제에서 2사체제로의 전환은 일단 한계사업으로 지목돼온 가전부문이 어떻게든 정리돼야 한다는 당위론에는 부응하지만 그 결과가 전혀 예기치 않게 전개돼 앞으로 가전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때 국내경제를 이끌어왔던 가전산업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3사에 의한 과열경쟁으로 저부가가치의 대표적 산업으로 치부돼 구조조정 과정에서 항상 퇴출 1호로 지목돼왔다.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가전부문의 매각과 분리를 기정사실화해 GE·일렉트로룩스 등과 매각협상을 계속해왔으며, 대우전자 또한 외자유치를 통한 합작법인으로의 전환을 꾸준히 추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빅딜은 양사 모두에 그 대상이 외국업체에서 국내업체로 바뀌었을 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내용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가전부문을 분사하거나 외국자본을 유치해 합작법인으로 독립시켜 일단은 가전부문에서 손을 뗀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지만 빅딜로 대우전자의 가전사업을 인수할 경우 오히려 가전사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 셈이다.
국내 유일의 종합가전업체라는 자부심으로 세계시장 개척에 주력해온 대우전자로서도 이같은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우전자가 외자유치를 적극 추진해온 것도 장기적으로는 가전사업부문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왔지만 이번 빅딜은 대우전자로 하여금 가전부문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전자가 이번 빅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양 그룹이 빅딜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관심은 어떻게 빅딜이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내용에 쏠리게 됐다.
관련업계에서는 이번 빅딜이 단순히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삼성자동차와 삼성중공업, 여기에 삼성전기의 전장부품을 포함한 자동차 관련부문과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오리온전기·한국전기초자·대우전자부품 등 대우의 전자관련 업체들을 맞교환하는 이른바 슈퍼빅딜로 확대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라는 완성품업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관련 부품업체의 생존이 불가능한만큼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나 삼성그룹이나 대우그룹 모두 자동차나 가전제품에 대한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진데다 이미 이들 전자부품이 대부분 공급과잉 현상을 빚고 있어 이같은 슈퍼빅딜은 또 하나의 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업계 일각에서는 대우그룹이 전자부품업체들을 별도로 분리해 부품 전문업체로 육성하거나 전자부품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LG전자가 인수하는 형태가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또 하나의 커다란 관심은 대우전자의 해외사업부문이 어떻게 정리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빅딜 자체가 사업 맞교환인만큼 해외사업장 또한 삼성전자가 인수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그동안 세계화를 기치로 전세계에 현지공장 건설을 서둘러왔던 대우 입장에서는 세계화의 전초기지인 해외 가전공장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실제 대우로서는 대우전자의 해외공장을 (주)대우로 이관해 자동차와 함께 종전처럼 세계화를 적극 추진해가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대우의 이같은 입장이 정부측에 받아들여진다면 이번 빅딜은 내수시장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도 매우 크다.
어쨌든 이번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은 이미 양그룹간 한계사업으로 지목된 자동차와 가전사업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사에 따른 시너지효과는 충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어느 선에서 빅딜이 이루어지든 국내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전자산업의 근본적인 재편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올 때까지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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