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8 전자산업 총결산 (1);종합

 전자·정보통신업계로서도 올해는 고통과 시련의 한해였다. 지난해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는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경제위기에 따른 소비가 위축되면서 수출의 기반이 되는 내수시장을 극도로 침체시켜 판매처를 잃은 상품들이 공장 가득히 쌓여만 갔다. 수출마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동남아시장의 침체 등으로 부진세를 면치 못했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아우성에도 금융지원 등 제반 시스템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출이 4년 만에 3백억 달러대로 곤두박질쳤다.

 IMF 한파는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극한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고비용 저효율로 기반이 약한 업체는 힘없이 쓰러져 갔다. 생사 갈림길에 들어선 업체들은 그나마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인원감축과 분사 등은 기본이고 수익나는 사업마저 매각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구조조정에 나섰다. 뼈를 깎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망 전문업체들이 사라져 갔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IMF가 한편으로는 온실 속에서 성장 일변도로 커온 전자·정보통신산업의 체질개선은 물론 경쟁력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IMF라는 외부요인에 의해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전자·정보통신업계는 재도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외부자금에 의존하기보다 자체자금을 활용해 사업을 벌이도록 유도하고 전문화를 유도하고 있다. 무리한 사업확장보다는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이익을 내면서 영업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기술이 부족한 업체에는 기술만이 살 길이라는 교훈까지 안겨주고 있다. 벤처기업이 새로운 미래를 안겨줄 대안으로 제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올해 전자·정보통신업계는 살아남기 위해 한숨 쉴 틈없이 긴장 속에 보낸 바쁜 한해였다.

 올해 전자·정보통신산업 수출은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의 부진으로 작년대비 7.2% 줄어든 3백84억4천만달러로 낮아지고 수입도 내수위축 등의 요인으로 25.8% 감소한 2백19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내수도 경기불황으로 6.2% 감소한 10조9천3백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생산은 원화가치 상승으로 24% 늘어난 69조7천4백억원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산업 수출이 줄어든 것은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부진한데다 컴퓨터모니터·컬러TV브라운관(CPT)·컬러TV 등 수출비중이 높은 제품들이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호조를 보이고 있는 품목도 있다. 무선전화기·컴퓨터 본체·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등은 작년보다 적게는 40%, 많게는 60%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수출규모가 작아 전체 수출증가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전자·정보통신분야 수출 효자품목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전화기와 PC. 지난해 이동전화 수출이 본격화된 지난해 통신기기분야 무역흑자는 5억8천3백만달러였으나 올해는 9월까지만 해도 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3억8천8백만달러다. 그만큼 이동전화기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주 수출시장인 미국과 홍콩을 비롯한 북미지역과 아시아지역에서 CDMA방식 채택이 늘어나면서 삼성·LG 등 국산 이동전화는 세계시장 곳곳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IMF체제 이후 지난 1년간 가전과 반도체 등 과거 전자·정보통신산업을 주도해왔던 산업이 내리막길을 달린 반면 이동통신·노트북PC·정보가전 등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은 급성장했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을 주도해왔던 반도체산업이 침체의 골로 빠져들면서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에 맞게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와 LG반도체의 통합이라는 극단적인 자구방안까지 등장, 연말 전자·정보통신업계를 후끈 달구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업계의 올해 경영의 핵심은 구조조정 문제였다. 대기업들은 군살제거에 나서 일부 사업부문 매각은 물론 아웃소싱과 분사를 적극 추진했다. 한계사업의 경우 과감하게 철수하는 등 구조조정 노력은 1년 내내 계속됐다. 한편으로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건실화를 꾀하고 있다.

 가전업계는 IMF 이후 성장위주의 경영구조를 과감히 버리고 생존을 위한 채산성 확보로 전환하고 있다. 채산성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거나 줄여 몸집을 가볍게 만들고 채산성 있는 사업에 치중함으로써 생존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악화된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컴퓨터업체들은 국내 컴퓨터산업 기반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리해고·한계사업 정리·유관부서 통폐합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통한 살아남기 전략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또 업체간 전략적 제휴와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등 IMF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PC와 모니터, CD롬드라이브 등 각종 주변기기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통신업계는 그나마 IMF의 거센 한파 속에서도 내수 및 수출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상반기 동안 매출액만으로도 전년도 한해 실적과 비슷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올 한해 정부 시책은 IMF를 극복하기 위한 수출확대와 벤처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아우성에 정부가 수출업체에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했지만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맞물려 현장지원이 안되는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학 동아리까지 정부가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경제개방과 규제개혁, 지식기반 신산업 육성 등 굵직한 정책들이 대거 등장했다. 정부는 세계경제의 개방화·자유화 추세에 맞추고 대일무역 역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78년에 도입된 수입선 다변화제도를 5인치 이하 컬러TV·팩시밀리·전자개폐기·형광램프 등 7개 품목의 전자·전기제품을 포함한 40개 품목을 올 7월1일부터 해제한 것을 시작으로 99년 6월말까지 완전 폐지키로 했다.

 경제개방으로 외국 전자·정보통신업체들의 국내 진출이 활기를 띠면서 전략적 제휴 또는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영국·일본·미국·캐나다 등에서의 활발한 투자유치 설명회에 힘입어 10월말 현재 정보통신산업분야의 외국인 투자유치는 한솔PCS·LG텔레콤 등 통신서비스분야 7억6천4백만달러와 어필텔레콤·팬택 등 통신기기 1억7천5백만달러 등 약 9억4천만달러에 달했다. 이밖에 모토롤러(3억달러) HP(1억5천만달러) 보스턴은행(6억달러) 등 총 12억5천5백만달러의 투자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며 10억달러 안팎에 달할 데이콤과 한국통신프리텔 등의 외자유치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올해 이슈가 됐던 전자 관련법으로는 전자거래기본법·통합방송법 등이다. 특히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인 통합방송법은 국회 상정을 내년 3월로 연기하는 등 이 법에 대한 입장정리를 아직까지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업계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악몽의 터널」과도 같은 98년을 마감하며 업계는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내년에는 세계 경기의 호전과 더불어 우리 산업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반전되리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