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대우전자 TMA 사업부장·이사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신발산업은 소위 잘 나가는 업종이었다.
무엇보다도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미국의 백화점에서 제일 좋고 비싼 운동화의 안창에는 어김없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원산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 브랜드가 나이키건 리복이건 한국이 최고급 브랜드 신발의 원산지국이라는 은근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과거 신발산업이 가져다 준 영광을 이제는 디스플레이산업이 재현하고 있다.
세계시장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컬러TV와 30%를 점유하고 있는 모니터, 25%를 생산하고 있는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를 보면 세계시장에서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세계적인 품질의 운동화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생산했던 한국의 신발산업은 단기간내에 급속히 쇠락하고 말았다.
디스플레이산업이 과거 신발산업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신발산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비관적일 것이다.
디스플레이산업과 신발산업의 유사점은 첫째로 저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이다.
나이키나 리복 등 최고급 운동화의 가격은 1백달러가 넘지만 제조업체의 공급가격은 소비자가격의 1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현재의 상황이 특수하기도 하지만 LCD를 포함해 한국 전자업체들이 만드는 중소형 컬러TV와 모니터 등도 대부분이 저부가가치 상품이다.
운동화와 다름없는 저부가가치 상품들을 대량으로 만들고 수출하던 과거의 실태가 상품만 바뀐 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둘째로 시장지배자 종속형이다.
열심히 만들어 값싸게 수출한 제품이 비싼 소비자가격으로 팔린다는 점에서 신발제품과 디스플레이제품은 매한가지다.
디스플레이산업은 장치의 투자규모나 기술의 복잡도 등에서 신발산업과 다르다고 하지만 투자만 하면 누구나 제품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장지배자 종속형에 속한다.
셋째로 기술 종속형이다. 저부가가치나 시장지배자 종속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원천기술 또는 시스템기술 없이 소위 얻어온 기술 위주로 생산에만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신발산업의 경우 운동화를 신체의 일부로 여기고 편안함과 기능성을 살리기 위한 시스템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
디스플레이산업 또한 소비자가 원하고 만족하는 제품을 주도적으로 개발해 상품화하지 못한다면 기술이나 시장 종속과 같은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디스플레이산업이 신발산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및 업계의 근본적인 인식전환과 대책이 마련, 시행돼야 한다.
저부가가치 업종은 사양산업이고 무조건 첨단분야만이 최고이며 저부가가치화는 과당경쟁과 공급과잉에 의해 초래됐다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뭇가지만을 보는 상황인식은 자칫 디스플레이산업을 신발산업처럼 후발경쟁국에 넘겨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업계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고 후발경쟁국들이 모방할 수 없는 원천기술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두 발이 있는 한 신발산업은 계속 될 수 있듯이 사람의 두 눈이 있는 한 디스플레이산업은 영원하다고 볼 때, 기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더욱 밝고 선명하고 대형화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 가격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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