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58)

 여자는 컴퓨터 전문용어가 나오면서 어떤 이론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자 상당히 흥미있어 하면서 눈을 반짝거렸다. 그렇다고 내 말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눈치였다. 내가 그녀의 기쁨조 노릇을 할 이유는 없지만, 웬지 그녀로부터 도망갈 자신이 없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여자는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나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모두에 관심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사실 상고를 나온 사람입니다. 컴퓨터기술실 직원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데도 어느 선배의 도움으로 취직이 되었지요. 일단 취직을 하고 보니 컴퓨터에 관심이 갔습니다. 기술실에서 하는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만,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기계를 수리합니다. 그 기계란 농기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CPU인데, 이것이 가로, 세로 오십센티 이상의 회로 막으로 된 것입니다. 트랜지스터를 연상하면 됩니다. 이 CPU보드가 고장이 나면 회로를 테스트하고 진단프로그램을 어셈블리어로 작성합니다. 저는 기술실에 몇 개월 있으면서 선배 기술자들이 그 작업을 하는 일을 어깨 너머로 보다가 도와주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회로도를 보고 테스트 프로그램이 작동되는 상황을 오실로스코프로 검진하는 일도 하지요. 많은 칩 중에 고장난 것을 찾아냅니다. 기본적인 컴퓨터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야 했는데 우리나라 서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의 원서를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읽은 것이 「Computer Algorithm」 「Data Structure」 「Memory Management Theory」 등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론에 대한 습득은 기본적인 것이지요.』

 나는 불필요할지 모를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았다. 처음이나 다름없는 그녀와의 만남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말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나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눈치였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차를 모두 마시고 그녀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나는 올라가서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에 그녀는 나의 회사에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지하층에 있는 다방에서 만났다. 그녀의 한 손에는 선물 포장지로 싼 조그만 상자가 보였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