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전형적인 충무로판 멜로드라마다. 새로움은 없지만 마음을 붙잡는 끈적함이 있고, 세련됨은 없지만 상투적 감성의 힘을 믿게 만든다.
깡패의 사랑이야기는 사실 물릴 만큼 한국영화가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소재다. 구태의연하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대안이 눈에 띄지 않는 상업영화의 이야기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적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와 강한 남자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통해 눈물을 자극하는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가 대중적 감성을 자극한다는 굳은 믿음 때문일 수도 있다. 「약속」의 경우도 이러한 액션멜로가 갖는 주류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웃음과 눈물의 비중을 적절히 배합시키며 기존의 영화적 타성을 조금 비켜간다. 이것이 또다시 지겹게 반복되는 사랑이야기지만 새롭게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매력이 되고 있다.
깡패 조직의 보스 공상두는 반대파의 습격으로 온몸에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실려온다. 그의 담당의사인 채희주는 처음엔 그를 못마땅해하며 거칠게 대하지만 공상두가 얼굴의 붕대를 푸는 순간 그의 순수함에 끌린다. 퇴원한 공상두 역시 채희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아이디어를 동원한다. 불법으로 발급한 운전면허증에서 외제차, 값비싼 목걸이에 이르기까지 공상두는 자신의 방식대로 채희주를 공략해 보지만, 정작 사랑을 얻게되는 계기는 마음 심(心)자의 깃발을 꽂은 작은 장난감 차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채희주는 공상두에게 새롭게 살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카지노 이권을 둘러싸고 동업자인 남정택파의 음모가 시작되고 둘의 사랑도 위험에 빠진다. 손을 씻으려 했던 공상두는 자신의 심복인 오기량이 남정택파에 의해 죽음을 당하자 그 보스 일당을 찾아가 살해한다. 한편 공상두를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던 엄기탁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수감된다. 그러나 공상두는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자수를 결심하고, 채희주와 마지막 이별의 결혼식을 올린다.
한국 독립프로덕션의 효시 작품이라고 할 만한 「영웅연가」로 데뷔한 김유진 감독의 여섯번째 연출작인 「약속」은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흥행적인 코드를 많이 내포한 작품이 됐다. 연극연출의 경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들어온 탓인지 그의 영화엔 스크린을 장악하는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진 않지만, 주인공들의 연기력을 끌어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탁월한 뚝심은 있다. 「약속」에서도 영화적 허술함을 메워주는 역할은 단연 박신양과 전도연의 몫이다. 일상적이진 않지만 가슴 절절한 운명적 사랑을 뱉어내는 대사나 상황설정은 낡긴 했지만 나름대로 맛이 있다.
<엄용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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