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직원 사기양양에 힘쓸 때다

 정기인사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맘때쯤이면 기업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술렁이게 된다. 그러나 올해 정기인사철을 맞은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모습은 예년과는 크게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래도 예년 같으면 걱정을 하면서도 승진이나 승급 또는 여타의 인센티브 등에 희망을 걸기도 했었지만 IMF경제체제에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지금에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년과 다른 변화는 상당수의 임직원들이 앞으로 대대적인 인사나 조직개편설이 예고되고 있는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같은 모습은 묵묵히 일한다는 뜻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이번 인사에서 용케 살아남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심한 무력감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국내 전자업계는 지난 1년 동안 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심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살아남는 데 온힘을 기울여 왔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은 말 그대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하나의 소모품이라는 점에서 심한 자괴감마저 느끼고 있다. 실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당수 임직원들이 명예퇴직 또는 희망퇴직·분사 등으로 인해 조직에서 내몰렸다.

 다행히 대량해고 바람을 피해 자리를 보전한 임직원 역시 예년에 비해 폭증한 업무량에다 관련사업의 부진으로 인한 고통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다 임금은 형편없이 줄었으며 타 업종에 근무하는 동료들로부터 한때 부러움과 함께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최상의 복리후생도 경비절감을 이유로 모두 삭감되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결국 IMF체제 1년이 지난 지금 전자업계 임직원들 상당수는 그동안 자기가 몸담아 왔던 조직에서 언제 이탈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탈피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한 상태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창의적인 일을 찾아 몰두하는 임직원들을 찾는다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상사가 무슨 일을 시켜도 눈치만 볼 뿐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임직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현재 이들이 느끼는 공허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국내 전자산업이 전체 수출의 약 35%를 차지하는 최대의 수출 주력업종으로 부상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첨단 전자산업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은 상당부문 전자업계 종사자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일할 의욕을 잃고 있는 현실은 IMF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고 국내 전자산업을 정상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적지않은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이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집단적인 누수현상으로까지 번지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불안한 심리상태와 꺾인 사기를 오랫동안 방치해서는 안된다. 의욕상실은 곧 국내 전자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단행한 수많은 임직원들의 퇴사나 조직의 퇴출은 우선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생된 조직의 침체와 의욕상실, 체념이 조기에 치유되지 않고 장기화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며 이는 뼈를 깎는 고통을 참고 단행한 구조조정의 의미를 퇴색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임직원들이 과거처럼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 소신껏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역량의 강화와 분위기 쇄신 조치다. 이들의 사기가 되살아나야 경쟁력도 되살아나고 기업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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