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품질결함에서 비롯된 소비자들의 인적·재산상 피해보상 책임을 제조자에게 부여하는 이른바 「제조물책임법(PL법 : Product Liability)」을 2000년부터 전격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PL법 시행을 둘러싼 소비자단체와 관련업계간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관계기관 및 업계에 따르면 재경부는 지난 수년간 도입시점을 놓고 논란을 빚어온 PL법을 조기에 도입키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소비자제품안전법」 시안을 최근 마련, 17일 공청회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입법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00년 상반기부터 본격 시행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보호원을 비롯한 소비자단체와 보험업계는 PL법 조기 도입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나 이 법의 도입으로 보상보험료·제조원가 상승 등 상당한 경영부담이 불가피한 전기·전자·정보통신·산전·자동차 등 제조업계(부품 포함)는 IMF체제 상황에서 관련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큰 이 법을 2000년부터 시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경부와 소비자단체들은 『제품결함으로 인해 입은 사고에 대해 소비자의 신체·재산상 권리를 보호하고 안전사고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PL법 도입이 시급하다』며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PL법 도입이 확산, 국제화에 부응하는 차원에서도 더 이상 도입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소보원은 자체 설문조사해 지난 15일 재경부에 제출한 「제조물책임법 제정방향 실태조사」를 통해 『소비자의 63.6%가 제조자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현행 제도로는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등 96%가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비자의 72%가 PL법 도입을 지지하고 있어 이번만큼은 PL법 도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PL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제조업체)-소비자-관련 품질인증시스템이 삼박자를 맞추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며 『궁극적으로 소비자 안전을 도모하고 품질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하지만 당장 2000년부터 실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반발하고 있다.
제조업계는 특히 『PL법이 시행되면 피해보상 관련소송에 대비한 막대한 보험료와 전문인력 채용, 제조공정 변화 등 원가부담으로 판매가격이 상승, 결국 소비자 부담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내수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PL법을 도입할 경우 관련 산업계를 더욱 위축시킬 뿐 아니라 개발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소재·부품 등 관련업계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PL법의 맹점이 책임소재를 놓고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 산업체들이 소송에 휘말려 신제품 개발·생산·판매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엄청난 피해보상으로 하루아침에 도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의 현실과 국내 소비문화의 질적 수준, 관련 제도정비 등을 감안해 도입시점을 보다 냉정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PL법은 지난 62년 미국을 시작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현재 유럽·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도입이 확산되고 있으나 △책임소재를 놓고 완제품업체와 부품·하청업체간 공방 △제품의 원천적인 결함이냐 소비자의 실수냐를 둘러싼 사고원인 논쟁 △전문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 부담 가중 등의 문제로 세계적으로도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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