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JD파워코리아 사장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그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재상 디즈레일리의 말이다. 왜 통계는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 심한 거짓말로 지목됐을까. 아마 그 이유는 숫자가 갖는 설득력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것이 숫자로 표현되면 우리는 한층 진지해지고 주목하게 된다.
「실업자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보다는 「실업률이 3%에서 8%로 올라갔다」는 말이 우리 가슴에 더 와닿고, 「의무사용 기간이 끝나면 이동전화를 해지할 사람이 많다」보다는 「해지의향률이 30%」라는 말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연하다. 숫자는 기본적으로 정확하며 구체적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설득력과 신뢰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숫자는 우열을 분명하게 모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 준다. 갑의 타율은 3할2푼이고 을의 타율이 3할1푼이라면 갑의 타율이 을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정확히 1푼(1%)만큼 높다는 것을 분명히 전달해 준다. 이것은 숫자가 제대로 사용된 경우다.
때로 숫자는 이상한 놀음에 동원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셀 수 없이 여러 번 들어 본 경험이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10%인 반면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0.5%에 불과하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면 폐암으로 죽을 가능성이 20배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어진 숫자를 보고 흡연자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도 하고, 비흡연자는 상당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위와 같은 계산과 논리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면, 한 흡연자가 「내가 담배를 끊는다 해도 폐암이 아닌 이유로 죽을 가능성은 9%밖에 안 줄어들고(100∼90/99.5), 폐암으로 죽을 확률도 9.5%밖에 늘지 않는다. 그러니 가능한 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즐기는 것을 애써 포기하지 말고 살자」는 주장도 1백% 옳다.
이러한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숫자의 기본적 기능과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을 기분내키는대로 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론조사와 관련했을 때 숫자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이를 널리 전달하는 사람이 있으며 전달된 숫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일차적으로 숫자를 만드는 사람이 잘해야 한다는 것에는 어떠한 이의도 달 수가 없다. 그러나 전달자의 역할 역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때로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조사기관이 최선의 숫자를 만들지 못할 수가 있고 최선의 숫자라고 하더라도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전달자에게는 이러한 것을 구분하고 평가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숫자를 선별할 수 있고, 그것의 참뜻을 허황된 숫자놀음이 아닌 방식으로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숫자를 전파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숫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잘 알아야 한다. 옥석을 구분할 줄 모르면서 함부로 숫자를 곱하고 나누는 놀음을 하는 것이 바로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 새빨갛다는 오명을 통계에 씌어 준 수많은 원인 중의 하나다. 이제 숫자를 만드는 사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냉정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힘을 합해 그 오명을 벗겨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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