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44)

 컴퓨터는 바로 언어라는 사실을 내가 깨달은 것은 한참 후였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컴퓨터는 수학, 즉 계산이라는 관념 속에 있었다. 물론 컴퓨터 언어는 그 정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따져 계산은 기본적인 틀이고 실제는 언어였다. 인간이 하는 언어를 기계가 하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기의 컴퓨터 기능은 주로 계산을 중심으로 처리했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으로 인지되었다. 하지만 반도체의 발전과 마이크로의 개발은 계산 기능을 훨씬 넘어서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훗날 컴퓨터는 인간의 감정이나 오감까지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원서를 사들고 신촌 하숙집에 들어갔다. 하숙비 때문에 두 사람이 하나의 방을 쓰는 2인용 숙박을 했는데,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은 그 부근의 대학에 다니는 시골 청년이었다. 이제 대학에 입학을 한 신입생이니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그 무렵 신입생들이 그 하숙집에 대거 들어와서 대부분 비슷한 또래였다. 바로 복도 건너편에 이대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이 있을 뿐 그외에 여자는 없었다.

 음대에 다닌다는 그녀의 방에는 피아노가 있는데 자주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옷을 벗기도 전에 먼저 피아노 앞에 앉는 듯했고 그리고 피아노를 몇 곡 쳤다. 마치 피아노에 인사를 하지 않으면 다음 행동을 못하는 사람처럼 습관적이었다.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청년이 컴퓨터 원서를 보더니 히죽 웃으면서 물었다.

 『그거 읽을 수 있소?』

 『뭐 말입니까? 일본어 책 말입니까, 아니면 영어 책 말입니까?』

 『모두 다요. 읽으려고 사온 것이라면 말이오.』

 『영어는 좀 읽지만 일본어는 전혀 모릅니다. 배워서 읽어야지요.』

 『배워서 읽어요? 재주도 좋소.』

 그는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한 창가로 갔다. 복도 건넌방에서 다시 피아노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형씨는 본 일 있소?』

 『뭘 말입니까?』

 『복도 건너편의 여학생 말이오.』

 『아뇨. 관심이 없습니다.』

 『난 아침에 봤는데 기차게 예쁘더군요. 목이 상아처럼 하얗고 긴 것이 사람 죽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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