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흐지부지되는 출연연 개혁

 정부 개혁의 시범 케이스인 정부출연 연구기관 구조조정이 유야무야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 의결이 최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일부 장관들의 반대로 보류돼 이번 국회에 상정이 어렵게 됐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부 산하 13개 출연연구소가 노조 측과 협상을 통해 지난 10월 말까지 확정하려던 구조조정안도 노·사 양측이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지도 못한 채 한달 여를 입씨름만 하다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며 금융과 기업 부문에 대한 개혁작업을 강도높게 추진하면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이처럼 대조적으로 소극적인 대처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초기의 개혁 약속들이 갈수록 흐지부지되는 듯하다.

 「정부출연 연구기관 법안」은 지난 5월 기획예산위원회가 확정, 발표한 연구기관 개혁안에 따라 연구기관의 정부 부처별 소속을 없애고 총리실 감독 아래 상호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공청회를 통해 의견수렴도 했고 또 국무회의에 상정될 정도면 관련부처간에 사전 의견조율도 거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일부 장관들이 반대했다는 것은 최종 법안 정리상 문제가 있거나 출연연 개혁 의지가 미흡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일부 부처 장관들은 이 법안 의결과정에서 연구기관의 부처 소속을 없앨 경우 부처에서 필요로 한 연구를 원활히 수행하기 어렵고 또 연구기관이 총리실의 감독을 받는 기관이 될 경우 부처가 연구기관의 하부기관이 된다는 문제 등을 지적,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적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면 법제정 취지의 한 축인 자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출연연이 주무부처를 떠나면 경우에 따라 상호 의견차이로 곤혹스러워 질 수 있다.

그러나 각종 정책오류가 출연연이 제목소리를 내기보다 주무부처 눈치보기에 급급해 나온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기존 출연금의 50∼80% 선에서 총리실을 통해 받는 기본 연구비외의 연구비는 결국 출연연들이 세일즈를 통해 주무부처에 편성된 연구비를 따서 보충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부처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된다. 장관들이 이처럼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법안 의결을 반대했다면 앞으로 정부와 공공부문의 개혁은 요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지가 미흡하다는 것은 출연연별 구조조정안을 놓고 노사 양측이 의견대립으로 맞서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각 출연연별 구조조정안은 과기부가 당초 9월중 확정하기로 했다가 노조 측의 강력한 반발에 확정시한을 10월까지로 지연시키는 등 한차례 물러섰던 문제다. 그런 데도 아직까지 협상방식만을 놓고 티격태격할 뿐 주요 현안인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구조조정안이 현재 정부가 마련한 안을 그대로 시행한다 해도 정년이나 유급휴가·신분보장·경비절감 등 그 어떤 항목에 있어서도 일반 민간기업보다는 여전히 나은 수준인 데도 그렇다. 이 때문에 내부수리비만 낭비했다는 비아냥만 들릴 뿐이다. 한마디로 정부와 공공부문의 개혁은 소리만 요란했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출연연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면서 우수한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떠나고 연구기능이 침체되고 있다는 데 있다. 국제경쟁력은 연구개발(R&D)에 좌우된다. 각 나라마다 연구개발과 그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구조조정 문제로 과학기술 개발의 중핵이 돼야하는 출연연들을 쇠락시키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손실인가.

 정부는 이들 연구기관들의 침체와 퇴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출연연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문제를 이른 시일내 매듭짓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결단은 자기희생을 전제로할 때 그 의미가 배가된다. 개혁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선 우선 정부와 연구기관 구성원 스스로가 연구소가 어떻게 해서 오늘과 같이 조락하게 됐는지 자기검증부터 해야할 것이다. 출연연 연구원들도 국가 전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는 개혁에 동참, 정부와 연구기관의 관계를 고객과 기업으로 재설정하는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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