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첫 근무가 끝나는 대로 나는 입사 축하주를 사겠다는 선배 배용정과 양창성의 청을 사양하고 곧바로 외국서적을 파는 곳으로 달려갔다. 광화문에서 서대문으로 가는 길목에 외국원서 전문점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 안내하는 여자에게 컴퓨터 관련 원서를 찾아달라고 했다. 여자는 컴퓨터 어느 분야를 찾느냐고 물었다. 컴퓨터에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겠지만 뭘 알아야지 말하겠는데, 백지 상태였던 나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대충 찾아달라고 했다. 대충 찾아달라는 말에 그녀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키는 구석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우선 컴퓨터라는 영어단어가 보이는 서적은 무조건 빼들고 들여다보았다. 대부분의 컴퓨터 관련 서적은 두께가 두껍고 복잡한 전문용어로 가득했다. 단순하게 영어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읽어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컴퓨터 원서를 읽기 전에 먼저 영어를 더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쪽 코너에는 일본어로 된 책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는데 일본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어느 것이 컴퓨터 관련 책이고 어느 것이 소설책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일본어 원서 가운데 책표지에 소형 컴퓨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림은 만국의 언어인 만큼 그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반가운 생각에 집어 들고 안을 보니 사진을 첨부한 컴퓨터 이론서적이었다. 나는 일본어를 몰랐지만 그 책을 사기로 했다. 그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본어를 공부할 것이다.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일본어 공부가 빨라지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나는 영어로 된 컴퓨터 원서를 하나 더 샀다. 낯선 단어가 많았지만 영어로는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컴퓨터 언어라고 하지만 처음에만 어려울 뿐 그 낱말을 숙지하면 아주 단순하였고, 컴퓨터 언어는 모든 것이 영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를 이해하면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기 쉬웠다. 잘 모르는 용어도 영어의 어원을 이해하면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터득하는 데는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영어 원서와 일본어 원서를 들고 나는 그 서점을 나섰다. 책값이 생각보다 비싸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원서를 가슴에 안았을 때 왜 그렇게 뿌듯한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정복한 기분이 들어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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