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안
「빅딜」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최선책은 아니라는 업계의 주장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는 반도체 분야를 빅딜의 대상으로 선정한 과정이 분석적이지 못했고 이 산업이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95년 사상 최고의 수출상품이라는 극찬 대상에서 97년 빅딜 대상으로 전락시킨 근본 책임은 해당 반도체업체에 귀속된다.
95년 한햇동안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올린 각 1조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익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절히 재투자되지 못한 것이 오늘의 화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빅딜이라는 극약 처방으로 수년간 쌓여온 문제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더 큰 오류를 가져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 합병 추진에 따른 정부측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는 과다한 국내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우려. 하지만 이는 최근 세계 반도체시장의 기술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착오라는 주장이다.
이미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의 마케팅 전략은 과거의 설비 투자 위주에서 연구 및 개발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국내업체들도 이러한 추세대로 향후 반도체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의 3사 체제로 가더라도 과다한 설비 투자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조립·검사 등 분리 가능한 공정을 국내 전문 중소업체로 이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는 최근 반도체 조립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일부 검사 공정을 중소업체로 이관하는 작업을 추진중이며 이를 통해 소자업체의 설비 투자비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국 인위적 합병을 통해 10개 이상의 생산라인(FAB)을 보유한 거대 반도체 회사를 만들어 몸집을 키우기보다 각자의 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설비의 활용도를 높이고 분리 가능한 공정은 분야별 전문업체로 육성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과잉 설비 투자의 위험성을 줄이면서 기술 개발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예를 들어 과거 국내 반도체 개발 초창기에 큰 힘을 발휘했던 업체간 공동 개발사업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별업체 차원에서도 D램에만 매달리는 사업전략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업체들이 메모리 편중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제3국 반도체 업체들에 기술을 건네주면서 생산기지화했던 전략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반도체 컨설턴트는 『중국 등 반도체 분야의 후발업체에 16MD램 2세대급 이하의 장비와 기술을 매각하는 이른바 무형자산 매각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 방법은 현재 LG와 현대의 가장 큰 어려움인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는 동시에 시장 상황 변동에 따른 위험부담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빅딜이라는 선택은 두 회사가 가진 장점을 최소화하고 단점을 극대화하는 최악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정부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업체들이 기본적으로 메모리 반도체에서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비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같은 의미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세계 정상급 기술을 보유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개별회사는 각자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욱 고도화되고 차별화된 반도체 사업 전략을 꾸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논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키우고 이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의 빅딜 정책보다 각사가 보유한 기술적 장점을 활용해 특정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려는 고도화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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