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민 태광산업 전자연구소장
반도체의 수명은 영구적이라고 하는데 이를 이용한 전자제품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언젠가 광고 카피에서 잘 고른 제품 하나 10년을 좌우한다고 하니 그 제품의 수명은 아마도 10년인 듯 싶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라디오가 만들어진 지 40여년이 됐지만 당시 라디오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60년대 말 흑백 텔레비전이 모습을 보였지만 간혹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세팅 도구로 모습을 보일 뿐 이것을 사용하는 가정 또한 없다.
전자제품의 수명은 기능이나 부품의 수명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은 패션과 기술의 흐름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아나바다」 운동을 강조해도 유행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는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IMF상황이 돼 살기 힘드니 뭐니 하지만 구청 청소과에는 아직도 현역으로 펄펄 뛸 냉장고가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오디오 역사는 장전축에서 시작된다. 별표전축이라 해 호마이카와 자개무늬로 처리된 멋들어진 진공관 앰프를 이용한 스피커 일체형 시스템이다. 소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60년대에 경제적으로 먹고 살만해지면 이 값비싼 장전축은 가정의 구매 대상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제 30년이 조금 넘은 셈인데 장전축은 황학동 벼룩시장에서도 보기 힘들다. 구할 수 있더라도 케이스는 없어지고 내장물 중의 일부만이 골동품적 가치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30년이란 세월에 이루어진 한국의 오디오 기술은 어느 수준일까. 교육수준으로 비교한다면 고등학교 과정 정도일 것이다. 즉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으면서 하고 싶은 것은 무척 많은 때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지금까지 배운 것보다 많이 남아 있다.
한국의 오디오산업은 수출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오디오 기술은 80년대 초반부터 수출전선에 뛰어들어 미국·유럽·일본 등에 구걸하다시피해 얻은 것으로 이제부터는 이 기반 위에 골조를 세워야 할 단계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술은 확실한 기초 위에 정말로 다지고 다져진 뿌리깊은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기술은 서구의 것들을 열심히 소화해 다른 차원의 자기 것으로 확실하게 만들어 놓았다. 오히려 민생용의 첨단기술은 서구의 것들을 능가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 기술력을 지님으로써 첨단기능을 지닌 일본의 신기술 제품과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저가형 중국 제품 사이에서 수요층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시장을 구축해 왔다.
특히 AV리시버와 관련된 한국의 기술력은 손재주 좋은 한국의 생산기술 수준과 어렵게 배워온 개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렵사리 키워온 우리 제품 개발력이 IMF 경제난을 맞아 제3국으로 새어나가고 있다.
비록 일부 업체의 경우지만 개발만 한국에서 하고 생산이나 금형 제작은 모두 제3국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경쟁상대인 제3국에 우리의 기술을 이전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한국의 오디오 수출에 막대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는 리시버 수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러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출의 메리트를 최대한 누려야겠지만 바이어들이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 형편이라고 한다. 간신히 일궈놓은 한국의 기술력은 너무도 빨리 제3국으로 이전되고 있다.
우리들이 일본에서 오디오 기술을 배울 때의 설움과 괄시에 비하면 상전으로 떠받들고 나사못 하나에서부터 첨단IC까지 모든 것을 갖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오디오 기술이 제3국으로 넘어가면서 한국의 오디오 수출산업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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