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38)

 『나는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는 지식도 없고, 대관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지? 허 실장의 말처럼 청소나 하고 심부름이나 해야 돼?』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물론 옆에 서 있는 배용정이 들으라는 말이었고 나 자신에게 하는 경고의 목소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기죽지 말라니까. 여기 기술자들이라고 해야 모두 도토리 키재는 격이야. 아는 게 없어. 너는 분명히 할 수 있어.』

 그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가 나를 이 회사로 불러올린 것을 원망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격려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의 말처럼 나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만 내려가자. 가서 네가 해야 할 일도 맡고.』

 『청소나 심부름 말고도 거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

 『너 왜 이래, 임마? 허 실장이 너 건방지지 말라고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신경쓰냐? 처음에 말단으로 들어오면 누구나 하는 일이야. 네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개발하고 관리하는 전산교환시스템 작동 감시역이야. 좀 지루하지만 기계가 멈추지 않게 지키고 있어야 해. 기술실에 처음에 들어오면 하는 일이야. 지루하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어. 그때 책을 보면서도 지킬 수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가 먼저 옥상 층계로 걸어갔다. 나는 그대로 서서 그를 불렀다.

 『형, 잠깐만….』

 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앞머리 위로 늘어진 그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눈 한쪽을 가렸다. 그는 머리를 젖히면서 가린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어젯밤엔 정말 미안했어. 나 혼자 달아난 것. 내가 그렇게 의리 없는 놈은 아니지만, 그 일은 참 견디기 힘들었어.』

 『무슨 말이야? 미아리 말이냐? 그건 다 지나간 일이야. 그런데 너 생각보다 겁이 많더구나?』

 『그런 일에는 자신이 없어.』

 『처음에는 다 그런 거야. 너도 맛을 들이면….』

 천만에, 나는 그런 일에는 맛을 들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기술실로 들어가자 이 차장이 의자에 몸을 젖히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약간 조롱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웃어른들과 독대는 잘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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