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함정과 전반적 문제점
『LG반도체와 현대전자를 합병해서 얻는 게 뭡니까. 양사를 단일화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해본 적이나 있습니까. 「반도체 빅딜」이라는 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LG반도체 관계자)
『한국 반도체 업계의 빅딜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곳은 미국이나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일 것입니다.
이번 빅딜이 성사되면 한국 반도체산업의 세계시장 지배력은 급격히 약해질 것이 분명합니다.』(현대전자 관계자)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합병시키자는 이른바 「반도체 빅딜」이 정부와 당사자들의 생각 차이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 반도체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빅딜이 기정사실화한 상황 속에서도 빅딜에 대한 정부의 논리가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불만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정부에 대해서도 양사의 빅딜 협상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현상에만 집착해 문제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제라도 빅딜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는 원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빅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D램업체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생산수율에 관한 극비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는 등 예기치 않은 피해까지 속출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업계에 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던 외국 기업이 혼란을 이유로 투자의 발길을 돌리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빅딜이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대와 LG의 합병만이 과연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국내 산업구조에 영향을 줄 만한 업종에 대해 강도 높은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흔한 공청회 정도는 거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빅딜이라는 중차대한 정책을 정당한 설명도 없이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밀어붙이는 발상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반도체 업계 관계자)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5대 그룹, 7개 업종 가운데 특히 반도체 부문의 구조조정에 관련업계가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본적으로 업종 선정 과정에 과학적인 분석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반도체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하는 데 사용한 잣대는 「중복과잉 설비투자」와 「과당경쟁」 여부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폭락으로 국내 반도체산업의 부실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국내 반도체업체의 과잉투자와 이에 따르는 공급과잉 및 과당경쟁이 원인이라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 과정에서 반도체산업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성을 무시했다는 것이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그것은 바로 반도체산업이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해외에 내다 파는 수출주도형 산업이라는 사실이다.
협소한 내수시장에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타 업종과의 차이를 전적으로 무시한 채 같은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빅딜이라는 「부적절한」 처방을 내렸다는 지적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1+1을 결코 2로 만들 수 없는 시장구조상의 문제와 기술 및 공정상의 어려움, 최근 태동기에 접어든 장비 및 재료산업의 피해 등 양사의 통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전 검토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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