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의 데뷔작인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겪는 성의 이야기를 이불 밖으로 끌어내 저녁만찬을 즐기듯 야하고 유쾌하게 끌어간다. 「식욕처럼 자연스럽게 성욕을 풀어가자」는 이 영화의 콘셉트는 섹스에 천착해 있지만 그곳엔 스물아홉이란 나이를 불안하게 견뎌내고 있는 세 여자에 대한 관찰자의 인생관이 묻어난다. 때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침없이 내뱉어지는 「아랫도리 세상」의 이야기가 질펀한 농담거리로 격하되지 않는 것은 각본과 연출이 보여주는 솔직함과 관찰력, 뛰어난 기획력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사실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섹스는 리얼리티의 미덕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의 29세 미혼여성이다. 디자인회사 사장으로 능력 있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도 있지만 프리섹스를 즐기는 호정(강수연 분), 호정의 집에 얹혀 살면서 남자친구와 가끔씩 섹스를 하며 호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연이(진희경 분), 요리와 등산을 좋아하며 단 한번의 섹스 경험도 없는 대학원생 순이(김여진 분)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감한 대화들이 오가는 저녁 파티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카메라는 곧 미혼여성들을 대변하는 세 인물의 일상과 사건들을 쫓아간다. 호정은 결혼해 달라고 조르는 남자친구가 싫진 않지만, 처음 만난 낯선 남자와도 스스럼없이 호텔에 가고, 직장에서 부하로 일하는 어린 남자와도 자연스럽게 섹스를 즐기는 여성이다. 반면 순이는 『처녀성을 구제해 주겠다』는 동료도 있고, 섹스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와 데이트하느니 『혼자 해결하는 게 더 낫다』는 주의다. 직장 일도 썩 만족스럽지 않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그저 그런 연이의 모습이 불안한 29세를 드러내는 가장 보편 타당한 인물로 설정되었기 때문인지 영화는 연이의 이야기를 축으로 풀려간다.
굳이 남성이 만든 여성의 성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시각에 대한 새로움의 지평을 만들어 주었다는 평가도 얻을 만하다. 한편으로 너무나 자주 반복되는 「벗고 섹스하는」 나열적인 이야기들이 영화적 긴장감을 상실하여 지루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이란 소재를 시대적 감각을 갖고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신인감독의 재능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엄용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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