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조용하다는 것은 아버지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하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 주정을 시작한 아버지는 지치지도 않고 밤새도록 떠들었다.
그러면 형과 나는 재빨리 피해서 밖으로 나간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우리들처럼 피하지 못하고, 대부분은 그대로 방안에 잡혀 있는 상태가 된다. 더구나 아버지는 주정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가지 못하게 방문 앞에 버티고 있다. 형과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가 살며시 들어와 부엌으로 간다. 그리고 방으로 통하는 창호지 문에 구멍을 뚫고 안을 들여다 보면 아버지는 문 앞에 버티고 앉아 잔소리를 하였고, 어머니는 방 한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면서 삿대질을 했지만 어머니는 단 한마디도 없이 잠자코 있었다. 그때 반항을 한답시고 뭐라고 반박을 하였다가는 얻어맞았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는 소죽은 귀신이 되는 것이다. 한때는 방과 부엌으로 통하는 창호지 문에 침을 발라 뚫어놓은 손가락 구멍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도 나이가 들었는지 밤을 꼬박 새우는 주정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나이라고 해야 이제 오십이지만, 공사판의 거친 생활과 계집질, 그리고 술에 찌들려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렸다.
지난날 그랬듯이 나는 처음에 부엌으로 접근했다. 그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엌으로 갔던 것이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부엌으로 가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 문을 뚫으려다가 멈추었다. 왠지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와 기침을 했다. 들어가도 좋은지 어머니에게 사인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밖이 춥잖니. 빨리 들어와. 네 아버지는 골아떨어졌다. 이제는 몸도 많이 골았나 보다. 밤새도록 지랄하더니 이제는 이렇게 일찍 쓰러지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좋다는 것인지 아니면 섭섭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밤새도록 학대를 당하는 그 수많은 날의 악몽을 이미 잊었단 말인가. 형과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주정하던 날 밤이면 부엌에서 떨면서 꼬박 새워야 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공포에 떨었다. 그것이 일상화하자 타성에 젖어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러나 공포만은 일상화하였어도 무서움은 여전했다. 그럴 때 우리는 부엌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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