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초 「디아블로」의 성공 이후 인기게임의 판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 대다수 롤플레잉처럼 꽉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니라 기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게임 중간에 다양한 퀘스트를 두어 게이머가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퀘스트를 수행해나가는 방식의 높은 자유도와 액션게임을 방불케 하는 시원한 전투, 화려하고 섬세한 그래픽 등은 그 당시로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수많은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그 인기 때문인지 국내에서도 올해부터 디아블로를 능가하겠다는 목표를 지닌 액션 롤플레잉 게임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퇴마전설」도 그런 유행을 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디아블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세세한 측면에서는 「디아블로」를 넘어서는 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주술이라는 표현이 적당한 각종 술법과 부적 및 아이템들은 이 게임이 서양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의 게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요소다. 하지만 장비에 따라 필드에서의 캐릭터 모습이 달라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약간은 엉성한 이벤트도 아쉬운 점이다. 주술을 단지 훈련에 의해서만 익힐 수 있다는 점도 불만스럽다.
「퇴마전설」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운드다. 한글로 나오는 성우들의 음성, 특히 주술을 사용할 때 주인공들이 외치는 소리들은 「정말 그럴 듯한데!」라는 감탄사를 연발케 해 소리만 듣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오디오 트랙으로 나오는 배경음악 역시 금방이라도 마물들이 나올 듯한 음산한 분위기 조성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이 게임은 국내 액션 롤플레잉으로서는 드물게 본격적으로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고 있다. 「디아블로」가 아직까지 최고의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도 높은 멀티플레이에 있는데 게이머들은 싱글플레이에서 찾을 수 없었던 신비한 아이템을 찾고 레벨 업의 한계를 시험하며 수많은 밤 동안 지하동굴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퇴마전설」에서도 8명까지 한방에 들어가 동시 플레이를 하면서 때로는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더불어 게임을 진행해나갈 수 있다. 이 때에도 싱글플레이에서 등장하는 이벤트들은 모두 체험할 수 있는데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재미는 혼자 하는 재미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노하우의 문제인지 여러가지 허점들이 눈에 띈다. 우선 「디아블로」에서도 나타났던 모습이지만 같이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관계 설정이 조금 더 명확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이벤트 해결과정도 매끄럽지 않고 버그라고 생각될 정도로 대화에서의 오류도 눈에 띈다. 그리고 싱글플레이에서 나타났던 아이템이나 주술 이외에 새로운 것을 멀티플레이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디아블로」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헤맸던 경험을 기대했던 게이머라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블리자드의 배틀넷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도 자금과 기술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제작사:트리거소프트/유통사:E2소프트) 작품성:★★ 흥미도:★★★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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