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

 계속되는 IMF한파 속에 기업들은 사활을 건 구조조정의 고통스런 과정을 겪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산업도 반도체 가격하락과 외환위기의 이중고를 겪으며 어디서 끝날지 모를 불황의 터널에 접어든 느낌이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이러한 위기는 우리의 반도체산업이 전분야에 걸쳐 한층 더 고도화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올바른 방향 설정, 과감한 투자와 더불어 강한 추진력이 따르지 않으면 위기는 재앙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아킬레스건(腱)은 비메모리 분야의 취약성이다. D램에 편중된 취약한 구조로 인해 겪었던 지난 수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비메모리에 대한 투자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과 규모의 문제로 대두됐다. 문제는 수요가 큰 고정고객과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D램과 달리 비메모리는 소위 움직이는 시장(Moving Target)과 새로이 떠오르는 시장(Emerging Market), 개개의 세트업체 등 다양한 시장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창의력·기술력·조직력을 갖춰야 하며 투자이익을 내는 데 비교적 장시간이 걸린다는 측면이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제한된 자금으로 투자회수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에 선뜻 투자하기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거 80년대 초반 경영자들의 탁월한 안목과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산업을 일으켰듯이 바로 지금이야말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비메모리반도체에 투자해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할 적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세계 4, 5위를 다투는 전자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주문형반도체(ASIC), 복합칩(MML) 및 표준형 반도체(ASSP) 산업을 위한 훌륭한 토양을 갖추고 있으며 필요하면 언제라도 비메모리로 전환할 수 있는 반도체 시설과 양질의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이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대규모 자본과 기술을 모두 갖추려는 폐쇄적인 방법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초기에는 필요한 핵심기술을 핵심코어 개발업체로부터 도입하거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자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아웃소싱을 통해 필요한 기술을 단기간에 습득하고 제품개발과 시장 진입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높다.

 이와 아울러 기술개발 및 라이브러리 구축과 시장정보망 구축, 목표시장과 타깃제품 설정 등 효과적인 마케팅전략 수립, 전세계적인 기술 지원체계 확립, 전문인력 양성과 효율적인 관리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이와 함께 일관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는 반도체 회사들이 다품종 소량생산 주문에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돼야 하며, 제조시설을 더욱 광범위하게 개방해서 대만·미국·일본 등의 ASIC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 개발업체들의 수요를 국내로 유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IMF위기를 겪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우리의 자존심이다. 수십년간 우리가 이루었다고 믿었던 한강의 기적에 대한 자존심이다. 하지만 잃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이 위기를 우리 반도체산업의 재도약이라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A R M 코리아 사장〉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