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6주년] 포스트 IMF과제-가전

글로벌화가 상당히 진전된 국내 가전산업은 IMF사태로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채무의 급증이다. 국내 가전산업은 한발 앞서 현지화를 도모한 일본업계 때문에 더 이상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서둘러 글로벌체제 구축에 나서야 했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 현지공장을 짓느라 빌려다 쓴 외채가 IMF이후 원화환율 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무구조 악화를 초래했다.

 더욱이 국내업체의 현지공장들은 일본업체들의 현지공장에 비해 진출시기가 늦어 수익구조가 열악한 상황에서 동남아는 물론 러시아·중남미 등 세계적인 금융불안에 기인한 시장침체로 경영정상화에 상당한 차질마저 빚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내 가전업계는 해외 현지공장과 국내공장간에 제품 및 시장 차별화를 완성하지 못해 어려움이 더하다.

 해외 현지공장의 경우 현지시장의 침체로 생산위축과 재고증가에 시달리는데다 현지공장들의 증가로 해외시장 기반이 상당히 위축된 국내공장들은 내수시장마저 절반 가까이 축소되는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공장들이 저임금의 해외공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지니는 첨단 가전분야는 아직 일본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에서 뒤떨어지는데다 시장마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국내 가전업계는 IMF이후 성장위주의 경영구조를 과감히 버리고 생존을 위한 채산성 확보로 전환하고 있다. 채산성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거나 줄여 몸집을 가볍게 만들고 채산성 있는 사업에 치중함으로써 생존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악화된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채산성이 없는 많은 사업부문이 퇴출되거나 중소기업으로 이관되고 있으며 사업분할이나 분사 등 다양한 경영혁신기법이 도입되고 있는데 이같은 리엔지니어링은 IBM이나 GE 등 미국업체들이 80년대 시도한 경영혁신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가전산업은 이제까지와는 매우 다른 판이한 구조로 재편될 전망이다.

 국내 가전업계는 국내업체간 제휴는 물론 해외업체들과 제휴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사업이 전개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며 각 업체의 내부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초래될 전망이다.

 이같은 변화양상은 아직 단정하기 이르지만 그동안 천편일률적이던 각 기업체의 가전사업구조가 기업마다 경쟁력 있는 아이템을 주력으로 하는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될 전망이며 유망한 정보가전시장을 겨냥, 그동안 엄격히 선이 그어졌던 컴퓨터 및 정보통신사업 부문과 결합이나 통합도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그동안 수출주력제품 역할을 해온 기존 아날로그 가전제품군들을 점차 해외로 이전, 국내공장의 고부가가치화와 해외공장의 제품 및 가격경쟁력 제고도 동시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개편에는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얼마나 채산성을 확보해 구조조정을 원만히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건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기존 유통체계의 존립기반이 흔들리면서 전자유통업계는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가전시장은 전체 수요의 80% 이상을 대리점에서 담당해왔는데 판매부진과 가전사들의 현금 유동성 확보 정책에 일선대리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문을 닫은 대리점은 전체 4천여개 가운데 17%에 달하는 7백여개인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대리점들도 80% 이상이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은 판매부진과 자금난, 이에 따른 제품력 부족 등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수요부진으로 인한 제품 수급 불균형은 제품시세를 크게 떨어트려 가전유통의 기반인 일선 대리점들의 가격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특히 월마트의 국내 진출과 함께 시작된 창고형 할인점들의 저가공세는 일선 유통점들의 입지를 크게 좁혀 놓고 있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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