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B업계의 수출시장 질서가 극도로 혼탁해지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가격인하를 통한 경쟁사 고객 빼앗기 등 국내 PCB업체간 과당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도가 더욱 심화돼 국내 PCB업체 전체에 대한 이미지 실추는 물론 수출 확대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해외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당경쟁 사례 중 가장 심각하고 고전적인 형태는 가격 후려치기 수법.
국내 중견 PCB업체인 A사는 올 초 남아프리카의 세트업체로부터 제법 큰 물량의 PCB 수출오더를 받아 부품수급을 끝내고 본격 생산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는 남아프리카 고객으로부터 1차 선적분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선적하지 말라는 전문을 받았다.
이유는 A사의 납품단가가 국내 경쟁사가 제시한 가격보다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거래처를 경쟁업체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급해진 A사 사장은 현지로 날아가 거래업체의 구매 담당자를 만나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구매 담당자가 보여준 국내 경쟁사의 납품단가는 자사 가격보다 무려 20% 정도 낮았다는 것. 국내 경쟁사가 제시한 가격은 이윤은 고사하고 생산원가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한 A사 사장은 두말없이 물러나고 말았다고 한다.
또 다른 국내 중견 PCB업체인 B사는 최근 더욱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올 초 미국 현지 딜러를 통해 미국내 유명 네트워크 장비업체에 다층PCB를 수출키로 계약을 체결하고 3회 정도 제품을 선적했는데 최근 이 업체로부터 납품단가를 인하하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환율 상승분을 고려한 미국 업체의 단가인하 압력이겠거니했던 B사는 거래업체가 제시한 서류를 보고 답변조차 못했다는 것. 이 회사는 미국내에 3, 4개 정도의 현지 딜러를 두고 있었는데 당초 거래를 튼 딜러를 제치고 또 다른 딜러가 기존 납가보다 10% 정도 싼 가격에 동일한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수출단가를 인하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 회사 사장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일부 종합상사까지 PCB 출혈수출에 가세, 국산 PCB의 수출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밝힌 D업체 사장은 『경쟁사가 힘들게 개척해놓은 거래처는 넘보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상거래 관행마저 무너지면 해외 시장에서 국내 PCB업체의 설 땅은 갈수록 좁아질 공산이 크다』며 국내 PCB업체들의 자제를 요청했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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