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게이머" 시대 열린다

『게임만 한다』고 부모들로부터 밥먹듯이 꾸중을 듣는 어린이가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나 프로 골퍼 박세리처럼 효자, 효녀노릇을 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재미나 소일거리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대항전에 나가 상위권 성적만 내면 다른 직업 부럽지 않게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프로페셔널 게이머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시작된 「프로페셔널 게이머리그(PGL)」는 연간 총 우승상금이 25만달러(한화 약 3억3천만원)에 달해 게이머가 직업화되는 시대임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반도체제조업체인 AMD를 비롯, 스리콤, AT&T, 로지테크, 재즈멀티미디어, 컴퓨터게이밍월드 등 10여개의 유명 관련업체를 공식스폰서로 확보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 미국의 PGL은 순식간에 수천만명에 달하는 미국 게이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벤트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PGL 우승자들은 일약 스포츠스타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고 있다.

프로 게이머시대를 예고하는 조짐은 국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올초 PC통신서비스 하이텔에 「게임넷」이란 이름의 네트워크게임 전용플랫폼을 공급한 비테크놀로지(대표 장석원)는 이달 1일 「제1회 KPGL(한국프로게이머리그)배 스타크래프트 명인전」이란 행사를 개최했다. 총 상금 1백만원을 놓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를 대표하는 32명의 게이머가 출전해 실력을 겨루었다.

비테크놀로지는 이어 지난 22일 총상금 2백만원을 놓고 제2회 대회를 개최했으며 다음달 부산행사에 이어 올 연말까지 모두 4, 5차례의 네트워크게임 대항전을 연다는 계획이다. 또한 게임제작사나 대형 인터넷게임방 체인을 중심으로 상금과 상품을 건 행사들도 여기저기서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금액과 참가규모를 볼 때 현재의 이같은 대회를 프로리그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의 국내외 게임산업계의 동향을 감안하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프로 게이머리그가 탄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 관련업계와 게이머들의 생각이다.

우선 온라인 네트워크게임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네트워크전용 게임플랫폼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칼리, 마이크로소프트, TEN, 엠패스인터액티브 등은 이미 네트워크게임 전용플랫폼을 세계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업체들로 비테크놀로지가 하이텔에 공급한 「게임넷」은 미국 칼리사의 플랫폼 엔진을 도입한 것이며, LG인터넷이 「채널아이」에서 제공하고 있는 「엠플레이어」는 미국의 엠패스인터액티브에서 도입한 것이다.

PC통신 및 인터넷서비스업체들 역시 온라인 네트워크게임서비스를 강력한 가입자 유치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이해관계를 함께 하고 있는 네트워크게임 플랫폼공급업체들과 더불어 프로 게이머리그의 주최자나 후원자를 자청하고 있다.

게임개발사나 제작사 역시 자사의 게임이 프로 게이머리그에 채택된다면 정품판매와 홍보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 프로 게이머리그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게이머들은 자신이 특정 게임에 관한한 최고실력자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 게이머리그가 태동하는 조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선 프로 바둑기사나 프로 골퍼를 선발하듯이 일정한 자질을 갖춘 게이머를 프로로 등용시키는 제도와 체계적인 룰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비테크놀로지의 관계자는 『프로 게이머리그를 협회나 법인화해 프로 리그행사를 주관하게 하고 프로 바둑대회나 자동차경기 리그처럼 불특정 다수의 스폰서가 주최하는 방식으로 프로 게이머리그를 운영하는 등 KPGL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스폰서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하반기께는 총 상금규모가 1천만원대에 달하는 행사도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국내 게이머들의 대부분이 청소년인 점을 감안할 때 과다한 상금이나 상품을 건 행사가 적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또한 네트워크게임 플랫폼은 물론 각종 리그전에 채택되는 게임이 주로 세계적으로 히트한 외국의 전략시뮬레이션게임이어서 프로 게이머리그가 결국 외국업체들의 배만 부르게 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근 세계 게임업계의 흐름은 부모들에게 걱정거리가 됐던 한 게임마니아가 국가대표가 되어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낳게 하고 있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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