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산업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IMF체제 편입 이후 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내수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함께 동남아를 비롯해 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환란사태로 인한 수출부진 등 국내외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수십년간 리딩산업의 역할을 수행해온 가전산업이 나라 안팎에서 몰아치고 있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러다간 세계 제2의 가전 생산국인 한국의 가전산업 위상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마저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올 들어 가전 분야의 내수경기 위축 현상은 가히 살인적이다. IMF 이후 가전 분야의 내수경기 위축 현상은 그동안에도 종종 보도된 바 있지만 최근 증감원이 발표한 전자3사의 상반기 매출실적은 이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전자3사의 내수판매실적이 전년 동기에 비해 업체별로 무려 30∼50%나 급감했다는 것은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판매위축 현상이다. 업체마다 새로운 히트상품을 개발하는 등 내수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최근의 심각한 내수경기 위축상황에 대해선 속수무책인 셈이다.
가전업계는 이같은 내수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나름대로 수출시장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최근의 상황은 최악의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수출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우려의 목소리다. 물론 전자3사의 지난 상반기 수출실적을 보면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절반 이상 급증한 것으로 집계돼 내수위축으로 인한 공백을 수출로 커버하는 수출약진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출실적도 올 들어 급격한 환율인하 추세를 감안하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일선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오히려 최근 들어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국내 가전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최악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연초부터 시작된 동남아시장 위축에다 최근에는 그간 급격한 수출신장세를 거듭해온 러시아의 환란에 따른 시장위축,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설이나 엔화약세 등 외부환경의 악재요인도 수두룩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장전문가들은 가전산업은 이미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하는 다소 성급한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가전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결코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발상과 전략의 과감한 전환이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가전 분야의 비용급증 원인을 제공했던 유통체계나 과도한 애프터서비스, 상품 구색맞추기 등 비생산적인 요소를 과감히 철폐해 나가야 한다.
또 하나 커다란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가전업체들의 기술 및 제품개발 전략의 전환이다. 이제까지 사업성이 없는 첨단기술만을 선호하던 실정에서 이제부터는 상업성을 지닌 핵심기술 개발로 연구개발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전자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항상 한계사업으로 지목돼온 백색가전사업이 실제로는 전자 관련사업 중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효자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반면 첨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디지털 관련사업이 아직도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비록 시장이 형성됐다 하더라도 팔면 팔수록 적자가 확대되는 기형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획일적인 인력감축이나 조직축소 등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구조조정 방향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같은 가전업계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가전업계 공동의 노력도 필요하다. 내수기반이 활성화하지 않고는 산업 자체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어 내수진작을 위한 가전업계 공동의 다각적인 방안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월마트 등 외국 거대 유통업체들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국내 가전유통의 축을 이루고 있는 대리점들이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입선 다변화 품목의 계속적인 해제조치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산 가전제품이 대거 유입될 경우 유통뿐 아니라 산업 자체의 기반이 무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동안 내수시장을 잡기 위해 불꽃튀는 경쟁을 벌였던 국내 업체간 시장점유율 확대노력은 이제 거대자본과 브랜드를 앞세운 외국 업체들에 맞설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가전산업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문턱에서 과거의 전철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전략의 변화를 모색할 때 다시 한 번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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