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령 3000호 기념] 특별기고.. 다매체시대 전문지 위상과 역할

이효성 성균관대 언론학 교수

일반적으로 다매체 시대에는 매체가 전문화하는 경향을 띤다. 전문화에는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내적 전문화로 한 매체가 다양한 내용을 실어 많은 사람의 다양한 관심에 소구하는 형식이다. 지금까지 잡지들이 이 전략을 주로 구사하였다. 최근에는 신문들이 잡다한 내용들을 실어 잡지화함으로써 내적 전문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관심과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종합편성을 하는 방송도 내적 다양화 매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적 전문화로는 전문적 정보욕구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 엄격히 말하면, 내적 전문화는 전문화라기보다는 다양화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신문이든 잡지든 종합지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단순한 다양화로는 전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전문화의 다른 하나는 외적 전문화 또는 단위 전문화라 불린다. 단위 전문화는 매체가 전체로서 한 전문적인 분야만을 다루는 전략이다. 이 단위 전문화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문화라 할 수 있다. 방송의 경우에도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과 같은 뉴미디어 방송은 채널별로 전문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단위 전문화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쇄매체의 경우 서적은 과거부터 단위 전문화 매체라 할 수 있고, 잡지도 종합잡지는 점점 퇴색하고 전문잡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신문의 경우에도 외적으로 전문화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전문지들은 전문화추세에 부응한다는 점에서는 정보화시대의 시류에 맞다. 특히 「전자신문」이 다루고 있는 전자정보통신 분야는 정보화시대에 전문지의 대상으로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분야다. 그러나 시류에 맞는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체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문매체라 하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독자를 확보해야 하고 따라서 대중성을 갖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전문지가 성공하기 위서는 전문성과 함께 대중성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되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가급적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편집전략이 요구된다. 그것은 기사의 수준을 떨어뜨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전문분야에서 가급적 다양한 관심에 소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지는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분야와 내용에서 기존 매체의 그것들과는 다른 어떤 특성이 있어야 한다. 전문화는 경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상품 차별화라 할 수 있다. 어떤 매체가 동종의 다른 매체와는 내용과 성격이 달라서 소구하는 수용자가 확연하게 구별될 때 상품차별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매체의 가장 손쉬운 상품 차별화 전략은 전문화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종합지들이 고전하는 이유의 하나는 내용과 성격에서 아무런 차별성 즉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매체 시장에 뛰어드는 후발주자들이야말로 뚜렷한 전문성으로 상품 차별화를 해야 한다. 전문화는 비교적 규모가 적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인구와 경제력에서는 틈새시장에서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새로운 매체가 전문화로 기존 매체들과 차별화하면 할수록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지가 차별화를 확실하게 기하고, 대중성을 확보하면 그 만큼 시장에서 성공의 가능성이 커지지만 그 가능성을 높이고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일반 상품의 경우 흔히 경쟁력이란 기술개발과 경영합리화 등으로 값싸고 질 높은 우수한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전문지의 경쟁력은 기자들의 전문성을 높여서 독자들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는 우수한 전문지가 되는 것일 것이다. 우수한 전문지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전문분야의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경중을 잘 가리고 중요정보에는 맥락과 의미를 적절히 부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지의 기자는 해당분야에 관한 기본지식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변화와 발전을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전문지는 일반 종합지가 그러하듯이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적당히 가공하는 수준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가 없다.

앞으로 사회가 분화하고 전문화하면 할수록 종합적인 매체보다는 전문적인 매체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앞으로 전문지들의 수가 많아지고 그 사회적 영향력이 그 만큼 더 커지게 된다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인 영향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 책임 또한 커질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는 전문지의 책임과 역할이 단순한 정보제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전문지도 언론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더 크게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지들은 독자들에게 해당분야의 정보를 단순히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쟁점을 찾아서 그에 관한 논의를 매개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그 분야에 필요한 변화와 발전을 견인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야와 관련된 정책당국이나 대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언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앞으로 전문지는 단순한 정보지가 아니라 언론으로 발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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