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SW 특허

이재욱 한국오라클 법률고문

특허청의 컴퓨터관련 발명 심사기준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신청되는 컴퓨터관련 특허는 특허청에서 매체 청구항을 허가하는 개정된 심사기준에 의해 심사를 받게 됐다. 심사기준의 개정취지는 컴퓨터산업 성장과 정보사회 진전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이 포함되는 신기술을 보호하고자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매체 청구항이란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매체(CD 또는 플로피디스크 등)를 하나의 특허 청구항으로 넣자는 것으로 직접 침해자뿐만 아니라 간접 침해자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가 총으로 파리를 잡으려는 격이 돼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를 보호하기보다는 더 큰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심사기준은 특허청 심사관들이 사용하는 하나의 내부규정이지만 그 여파가 국내 산업의 존폐를 가름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매체 청구항은 최근 몇 개의 미국 특허법원 판례에서 발상됐다.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 특허청이 이를 받아들였고 한국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인정한 셈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압력을 인식하고 매체 청구항은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특허는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바로 이 문제를 놓고 교수, 특허법원의 판사, 특허 변호사, 업계 대표자들이 심포지엄을 열었고 그 다음주에는 미국 변호사 협회의 지적 재산권 모임에서도 열띤 논의가 있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였고 이제는 대법원의 판례로 문제를 막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매체 청구항을 허락하게 되면 특허로 보호되는 프로그램의 권리가 저작권으로 보호될 때와는 판이하게 넓어진다. 저작권은 그 프로그램 자체를 보호하지만 매체 청구항으로 작성된 특허는 청구항에서 주장하는 기능이나 단계와 비슷한 다른 프로그램을 모두 권리침해로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면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저작권은 두 사람의 권리를 모두 인정하지만 특허로 권리를 인정받게 되면 특허를 먼저 출원한 사람의 권리만 인정돼 다른 사람이 아무리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하더라도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본인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 특허를 빨리 많이 가진 자가 살아남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업계가 특허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특허신청은 상당 부분이 외국에서 들어오고 있고 특허의 질도 상당히 높다. 이러한 특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면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제대로 성장해 보지도 못하고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이밖에도 특허로 프로그램을 보호하게 되면 그 비용이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든다. 특허를 작성하는 비용 이외에도 각 나라에 특허를 신청하고 출원받는 데 드는 비용이 나라의 수에 따라 급증한다. 다른 회사로부터 특허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받게 되면 각 특허에 대해 분석하고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의견서 작성에만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것은 법정에 가서 따지기 전의 비용으로 미국에서도 자본이 든든하지 않은 회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에 발생하면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결국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를 도우려는 특허청의 취지와는 달리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는 IMF한파보다 더 혹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아직 판례도 많지 않고 소프트웨어 특허를 이해하고 제대로 쓸 수 있는 변리사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고차원적이고 정착되지 않은 움직임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시기상조가 아닐 수 없다.

원래의 취지가 간접 침해자까지도 법의 저촉을 받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저작권법을 강화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미국에서조차 아직 정착되지 않은 사항을 도입해 실행하다가 미국 대법원이 제동을 걸어 매체 청구항을 하지 않게 되면 그 때에 다시 미국을 따라 가야 할까. 차라리 좀더 기다리며 소프트웨어 특허를 받아들일 만한 세계적인 분위기가 된다면 그 때 가서 받아들여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