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게임, 풍성한 "가을걷이" 만찬 채비

「파이널 판타지7」이 평정해버린 여름 게임가에 왜 재미있는 국산게임은 없냐고 투덜거렸던 게이머라면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자. 이달 중순부터 9월말까지 무려 10여편의 토종게임들이 잇따라 출시된다.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쏟아지듯이 국산게임들도 미국 메이저업체의 대작 타이틀을 비껴가기 위해 지각출시되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 그러나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국내 게임사들이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호빵맨」(드레곤 플라이) 「퇴마전설」(트리거) 「이스트」(HQ) 등 3편의 게임은 기대를 걸어도 좋다.

이 가운데 「호빵맨」은 온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횡스크롤 액션게임. TV만화 「날아라 호빵맨」 중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만 골라 게임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호빵맨은 물론 식빵맨, 세균맨, 해골맨, 잼아저씨, 짤랑이 등 조연과 엑스트라급까지 모두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캐릭터다. 호빵맨이 되면 종이접기 나라를 파괴하는 세균맨을 물리치고 주주마을로 가서 시들어가는 생명의 나무를 건강하게 살려내는 등 좋은 일만 하게 된다. 5만장이 팔려나간 히트작 「짱구는 못말려」식의 재미있는 줄거리에다 자연사랑의 마음까지 덤으로 심어줄 수 있어 미취학 아동에게도 안심하고 권할 만한 작품이다. PC게임은 너무 어렵다고 단념했던 부모들도 쉽게 따라해 볼 수 있다.

롤플레잉게임(RPG) 마니아라면 독특한 분위기의 리얼타임 RPG 「퇴마전설」을 주목하자. 세계적 히트작인 「디아블로」나 「미스」처럼 음침한 동굴에서 무자비한 살생이 이뤄지는 미국식 RPG는 아니지만 토종 RPG의 매력을 듬뿍 느껴볼 수 있다. 「퇴마전설」의 무대는 통일신라시대, 게이머는 3D와 2D를 접목시킨 현란한 도술을 부리며 마왕 천귀사신과 대결한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 옛날 어느 대장장이가 만들어 천귀를 지옥으로 보낸 적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통곡의 검」을 손에 넣어야 한다. 이른바 「다중 RPG방식」을 채택한 게임이기 때문에 주인공 이외에 2명의 동지를 선택해 서로 다른 장소에 보낸 다음 합동작전을 펼칠 수도 있다. 극장가에서 귀신이야기를 보며 서늘한 한여름을 보낸 게이머라면 컴퓨터 스크린 속에서 귀신을 쫓으며 막바지 더위마저 날려버릴 수 있는 작품이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열성팬이라면 「이스트」가 추천작이다. 피닉스와 드라코라는 이름을 가진 두나라의 대결구도 속에서 한편을 선택해 지휘관이 될 수 있다. 봉황을 숭배하는 피닉스는 동양, 용을 섬기는 드라코는 서양을 상징한다. 초보자라면 무기도 다르고 생산시스템도 판이한 적군과 싸우는 것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머리를 쓰면 강력한 마법을 동원해 실감나는 전투가 가능하다. 「스타 크래프트」처럼 인터넷으로 즐길 수는 없어도 PC통신을 이용한 모뎀플레이 게임으로 최대 4인까지 실력을 겨뤄볼 수 있다.

그밖에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를 게임으로 옮긴 「또또와 유령친구들」(KRG소프트), 2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선보이는 「머털도사」(OSC) 등도 기대작. 그동안 한번이라도 불법복제 경험이 있는 게이머라면 경제불황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에다 유통사의 잇단 부도 등 악재가 겹친 국산 게임업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정품을 구매하는 성의를 보여보자.

<이선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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