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길거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은 간판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간판들이 앞다퉈 자꾸 커지고 야해지고 길 위로 돌출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유리창마저 간판으로 변해버렸다. 「간판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느낌이다.
조용하던 시골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남한강이나 북한강가에는 이미 3,4층 높이의 「○○매운탕」 「○○호텔」 등의 울긋불긋한 간판이 치솟아 있다. 「가로등」 「뤼미에르」 등 무엇을 파는 곳인지 정확하지 않은 간판도 즐비하다. 시골길을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갈 때 느낄 수 있는 정취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오히려 차를 타고 가다 바깥을 내다 볼 때면 눈이 피로해지고 마음은 불안해진다.
최근 정부는 음식점이 외부에 가격을 표시할 경우 상수도 요금 감면, 쓰레기봉투 무상지원 등 인센티브를 주는 「옥외 가격표시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음식점 유리창은 메뉴뿐 아니라 가격표까지 덕지덕지 붙어 내부를 볼 수 없게 될 판이다. 음식점 입구가 도로와 멀리 떨어진 곳은 간판으로 뒤덮일 것이 뻔하다.
음식점뿐 아니라 전자제품 대리점도 이제 광고판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내달부터 가전제품 등 공산품에 대한 공장도 가격표시제를 폐지하고 권장소비자가격도 내년부터 없애기로 한 것이다. 공장도가격표시는 적정한 상품가격에 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지난 79년 공산품과 수입품에 의무화한 제도이고 권장소비자가격은 제조업자가 유통업자와 소비자에게 거래가격에 참고하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두 가격표시제가 폐지될 경우 소비자에게 가격정보를 제공할 대체수단이 필요하다.
대체수단의 하나가 「판매자가격표시(오픈 프라이스)」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상거래 관행으로 볼 때 판매자가격표시는 대부분 옥외광고로 하는 게 상식이다. 때문에 전자제품 대리점도 음식점처럼 제품별 가격표가 유리창을 덮을 것이 분명하다. 실판매가가 타 판매장보다 싸면 간판전쟁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현란한 문귀까지 포함시켜 소리없는 소음전쟁을 일으킬 게 뻔하다. 간판전쟁의 심각성은 미관을 크게 해쳐 의식, 무의식 속에 우리의 미적감성이 황폐해지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간판광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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