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글」 기사회생

「한글」이 마침내 기사회생의 계기를 맞게 됐다. 한글과컴퓨터가 한글 개발 포기를 전제로 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와의 투자유치 협상을 중단하고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한컴 인수제의를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위기에 처했던 한글이 일단 기사회생의 전기를 맞게 됐다.

한컴이 고심 끝에 내린 이번 결정은 한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특히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업계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들끓는 여론을 수렴한 것으로 한글 퇴출로 인한 사회적, 문화적 파장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우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동안 한글은 단순한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 국산 소프트웨어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져왔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한컴의 선택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상당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 국민적 소유물이라 할 한글을 지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은 각계각층이 전개해온 한글지키기 범국민운동이 결실을 맺게 됐다는 점에서 우선 큰 의의가 있다. 한컴과 마이크로소프트사 간에 투자유치 합의발표 이후 한달여 동안 각계각층이 전개해온 한글지키기 범국민운동이 마침내 결실을 맞게 된 것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사에서 일찍이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관행에 대한 깊은 자성과 함께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컴의 이번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인수제의 수용으로 한컴의 경영이 정상화되고 한글의 미래가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1백억원의 수혈로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안정적인 경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한글이 점차 마이크로소프트의 「MS워드」에 밀려 시장지배력을 잃어갈 경우 한컴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법복제의 근절도 문제다. 한컴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한글을 개발해 놓고도 오늘날 부도 직전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관행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글지키기운동본부 측은 이번 발표에서 앞으로 한글정품을 구입하는 회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등의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으나 불법복제가 만연해 있는 현실에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또 이같은 우려는 한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국산 소프트웨어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한글사태로 일기 시작한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운동」은 한컴의 이번 수용발표와 상관없이 불법복제가 근절될 때까지 계속 확산돼야 한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는 한컴이 오늘날 부실사태를 초래하게 된 것은 사실상 허울뿐인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정책도 일조를 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효성 없는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소비자의 무감각과 비양심적인 행위, 소극적인 기술개발 투자 및 방만한 경영 등은 이번 한글사태가 주는 교훈으로 받아들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이번 한글사태를 계기로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갖가지 제약을 면밀히 검토, 이를 제거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우여곡절 끝에 원점으로 되돌아온 한글과 한컴의 미래 그리고 이 둘의 진로를 도맡은 운동본부 측의 앞으로의 행보에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한글과 관련된 논란들이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한컴과 마이크로소프사 간의 협력관계 무산이 한국 기업들의 해외투자 유치노력에서 신뢰도 저하 등 악재로 작용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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