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KIST전산실의 발족-5대 컴퓨터공급업체 (5)
성기수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산실에 들여올 컴퓨터 기종 선정작업에 나선 것은
68년 가을이었다. 전산실이 발족된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KIST의 컴퓨터 도입은 전산실이 발족되기전인 67년 봄부터 거론돼 왔었다. 성기수의 KIST입소도 원래는 자체 컴퓨터를 도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컴퓨터 도입에 소요되는 비용은 65년 5월 18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존슨(Johnson B. Lyndon) 대통령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KIST설립을 지원키로 한 미국의 국제개발처(AID)에서 제공하기로 돼 있었다. 도입 컴퓨터 기종에 대한 선정은 물론 전산실장인 성기수의 소관이었다.
컴퓨터 공급업체들에 입찰참가요청서(RFP)를 발송한 결과 입찰에 참가하겠다고 회답해 온 곳은 IBM, CDC, 스페리랜드(Sperry Rand), 버로스(Burroughs) 등 미국계 4사와 일본의 후지쯔신기제작소(富士通新器製作所) 등 모두 5개 업체였다. 70년대 초까지 한국에 컴퓨터를 공급한 바 있는 업체는 거의 망라된 셈이었다. 실제로 67년부터 71년 말까지 한국에서는 모두 35개 기관과 기업들이 컴퓨터를 도입했는데 이 가운데 34곳의 컴퓨터가 이 5개 회사에서 공급한 기종이었다.
입찰에 참가한 기업 가운데 IBM은 67년 4월 경제기획원에 한국 제1호로 공급한 「IBM 1401」의 유지보수와 신규영업을 위해 서울에 현지법인 아이비엠코리아(한국IBM)를 설립해서 운영해 오고 있었다. 지난호에서 설명했던 대로 아이비엠코리아는 컴퓨터 분야 최초의 현지법인이자 한국 최초의 민간 컴퓨터회사였다.
스페리랜드는 한국쓰레트공업(벽산의 전신) 사장과 동양물산 회장을 겸했던 김인득(金仁得 벽산그룹 명예회장)이 68년 10월 동양물산 지분 20%와 스페리랜드의 미국 협력사인 플랜클럽(Plan Club)의 지분 80%를 합쳐 설립한 한국유니백을 통해 한국내 활동을 본격화하던 중이었다. 한국유니백 역시 아이비엠코리아와 마찬가지로 국립보건연구원과 육군본부 및 산업계 등에 잇따라 스페리랜드의 「유니백」시리즈를 공급한 뒤 원활한 유지보수와 신규영업을 위해 발족된 것이었다. 한국유니백은 71년 3월 스페리랜드가 현지법인 스페리랜드코리아를 설립하자, 인력과 고객지원 업무를 모두 이관했다. 86년 미국의 스페리랜드는 경쟁회사였던 버로스를 합병하면서 회사 이름을 유니시스(Unisys)로 개명, 오늘에 이르고 있다.
67년 9월 IBM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에 현지법인 콘트롤데이타코리아(CDK)를 설립한 CDC는 60년대가 다 가도록 한국에서 단 한 군데의 고객도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던 중이었다. 68년 서흥전기(瑞興電氣, 89년 현대테크시스템에 합병)를 대리점삼아 한국에 진출한 버로스 역시 단 한 군데의 고객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애간장을 태우긴 CDC와 매한가지였다. CDC와 버로스는 어떻게 해서든 KIST 전산실 도입기종 선정에 자사 컴퓨터가 낙점받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후지쯔신기제작소의 경우는 직접적인 영업거점은 마련돼 있지 않았지만 대신 67년 5월 한국생산성본부에 한국 제2호 컴퓨터인 「화콤 222(FACOM 222)」를 공급한 전력을 갖고 있었다. 후지쯔는 이어 69년 국립건설연구소와 70년 10월 농촌진흥청에 잇따라 「화콤230-10」을 공급하는 등 73년 말까지 10대 정도를 공급했지만 한국정부의 외자도입법의 규제로 진출을 미뤄오다 74년 2월 포항제철에 「화콤230-25」의 공급을 계기로 서울에 화콤코리아(84년 한국후지쯔로 개명)를 출범시켰다.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60년대 말 5개사 외에 한국에서 활동하던 회사로는 당초 금전등록기 전문제조업체로 출발했던 NCR와 「PDP」시리즈라는 미니컴퓨터로 당시 미국 최고의 벤처기업으로 꼽히던 디지털이큅먼트(DEC)가 있었다. 물론 이 두 회사는 60년대에는 한국에 단 한 대의 컴퓨터 공급실적도 갖지 못하고 있었다. NCR는 71년 9월 한국무역협회에 미니컴퓨터 「NCR C-200」을 한국대리점인 동아무역을 통해 첫 공급했다. 동아무역은 76년 NCR전문대리점 동아컴퓨터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89년 미국 NCR과 합작법인 한국NCR를 출범시켰다.
지금은 통상적으로 디지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는 DEC란 이니셜로 통하던 디지털이큅먼트는 개인 무역업자를 통해 천공카드용역회사인 한국키보드(88년 富勝精密로 개명)에 「PDP 8/E」를 공급함으로써 비교적 늦게 한국 진출 신고식을 치렀다. DEC는 75년 동양전산기술, 77년 두산컴퓨터 등의 대리점을 거치면서 한국시장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다가 88년 현지법인 한국디지탈을 출범시켰다. KIST전산실 출신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던 동양전산기술은 「PDP」시리즈를 국산화한 「오리콤540」에 대한 투자회수가 부진하자, 두산그룹에 자진 합병됐다.
60년대 말까지 활약하던 기업이나 기관으로는 7개 컴퓨터공급회사 외에 4곳의 소프트웨어센터가 더 있었다. 한국전자계산소, 서울컴퓨터센터, 금융기관전자계산본부(KBCC), 그리고 성기수의 KIST전산실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현 KCC정보통신의 전신인 한국전자계산소는 소프트웨어센터 1호로서 67년 1월 한국생산성본부 부설로 설립됐다. 한국인 최초의 IBM직원으로 알려져 있던 이주용(李珠龍, KCC정보통신 회장)이 초대 소장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60년 미시간주립대학원을 마친 뒤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IBM에 입사했던 이주용은 아이비엠코리아가 설립되기 4년전인 63년 IBM한국지사장이라는 명함을 갖고 1년 동안 서울에 상주하면서 IBM의 한국진출을 타진해보던 경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연도수로 따지자면 한국전자계산소는 아이비엠코리아보다도 3개월이나 앞서 출범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전자계산소는 출자와 설립 형태에서 엄연한 재단법인이었으며 4년 뒤인 71년에서야 비로소 (주)한국전자계산으로 독립했다.
서울컴퓨터센터는 한국자동차보험과 한국유리, 경성방직, 삼양식품 등 당시 잘 나가던 11개 기업들이 공동출자한 곳으로서 75년 소유주가 민경현(閔庚鉉, 민컴 회장)으로 바뀌면서 명칭도 현 서울정보처리학원의 전신인 서울컴퓨터학원으로 바뀌었다. 두 소프트웨어센터는 오늘날 시스템통합(SI)회사의 원조격으로서 천공(Key Punch)용역, 업무프로그램 개발, 전산화 컨설팅 등을 담당한 순수 토종 기업들이었다.
69년 10월 창설된 KBCC는 모든 금융기관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공동이용센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60년대말은 경제개발을 지상과제로 여기던 정부가 금융산업을 적극 권장하던 때로 이때 설립된 은행만도 외환은행, 주택은행, 신탁은행 등 5∼6개나 됐다. KBCC의 원래 취지는 금융기관들이 개별적으로 컴퓨터를 도입했을 경우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 인력부족, 시행착오 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KBCC는 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인터뱅킹, 즉 금융전산망 추진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KBCC 역시 재단법인 형태였다.
KIST전산실은 지난호에서도 언급했던 대로 KIST의 설립작업과 초기 연구소 운영을 주도했던 미국 바텔기념연구소의 67년 봄 연구조사 결과에 따라 발족된 것이었다. 성기수가 KIST 입소 전 임시연구원 자격으로 직접 참가한 이 연구조사에서 바텔기념연구소는 앞으로 한국내 상당한 전산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외부용역에 의한 것보다는 KIST에 컴퓨터를 직접 도입해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60년대 말까지 4곳의 소프트웨어센터들은 출자 형태가 기업, 기관할 것 없이 모두 앞다퉈 공공성과 공익성을 내거는 통에 KIST전산실의 정체성(正體性)은 여간해서 드러낼 여지가 없었다. 컴퓨터산업이 아직 발아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데다 컴퓨터 자체가 갖는 희귀성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KIST전산실은 발족 1년이 지났는 데도 아직 자체 컴퓨터 도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적어도 장비 면에서 본다면 4곳의 소프트웨어 센터 가운데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럴수록 KIST전산실에 대한 성기수의 염원은 한결같았다. KIST 전산실을 한국 최고 수준의 기술과 컴퓨팅파워를 갖춘 전산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자 인생의 목표였다. 이 시점에서 성기수에게는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했던 것은 당대 최고, 최대 성능을 가진 컴퓨터를 도입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KIST 전산실의 컴퓨터 도입기종 선정 입찰에 참가한 5곳의 컴퓨터회사들은 68년 11월까지 각자 제안할 모델의 이름을 적어 왔다. 5기종의 모델들은 「시스템(S)/360」(IBM) 「유니백9400」(스페리랜드) 「B 3500」(버로스) 「화콤230-10」(후지쯔신기제작소) 「CDC 3300 MSOS」(CDC) 등 당대 최고 성능을 자랑하던 초대형 컴퓨터들이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특성과 장점을 갖고 있었다. 기종선정의 전권을 갖고 있는 전산실장 성기수로서도 하나같이 탐을 낼만한 기종들이었다. <다음주 목요일자에 계속>
<서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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