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환 대우전자 디지털TV연구소 소장
TV의 조립생산으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가전산업은 70년대 한국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후 수출 및 내수 시장의 성장에 따라서 산업규모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우리나라의 가전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그동안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 위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자신의 브랜드를 갖지 못했으며 또 성장에 급급해 왔던 가전사들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브랜드 세일에 힘을 쏟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생산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든 근래에 와서는 우리나라 가전사들도 해외 브랜드 세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해외에 한 번이라도 나가본 사람이라면 웬만한 공항의 푸시카트에는 모두 한국 전자업체들의 이름과 심벌마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뉴욕의 타임스퀘어나 홍콩의 빅토리아 항구, 심지어 중국의 서부 내륙도시인 청뚜의 중심가에도 한국 가전사들의 대형 빌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히트상품이 없는 이와 같은 회사광고는 눈, 코, 입 없는 얼굴광고와 같다. 사람들은 단지 그 회사의 심벌인 얼굴만을 기억하게 될 것이며 그 눈, 코, 입 없는, 매력 없는 얼굴은 광고판이 없어지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쉽게 사라질 것이다. 가전산업과 같이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기업은 자신의 얼굴 즉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요즘에는 소비자를 상대로 하지 않는 기업까지도 자신의 이미지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PC의 CPU를 제작하는 인텔사가 PC의 케이스에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로고를 붙인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은 그동안 히트상품과 결합된 회사 이미지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또한 이와 같은 이미지를 자사의 공통적인 이미지로 부각시키는 데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세계적 표준과 형태가 정해져 있던 기존 가전제품의 경우 이와 같은 히트상품을 내는 데에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광고비가 들었으며 또한 기본적인 기술축적 없이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향은 앞으로 21세기에 펼쳐질 정보가전산업에 있어서는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직까지 정보가전은 PC, PDA, 인터넷TV 등과 같은 컴퓨터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앞으로는 컴퓨터와 가전기기가 융합, 새로운 정보가전 문화를 개척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정보가전의 대표적인 예로 디지털TV를 들 수 있다. 디지털TV는 새로이 태동하고 있는 정보가전의 한 분야로서 단순한 디지털 영상신호를 처리하는 것 이외에도 모든 멀티미디어 기능을 흡수, 통합해서 하나의 종합정보 터미널로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위 멀티미디어로 일컬어지는 정보가전의 특색은 그 다양성에 있다.
이와 같은 다양성은 소프트웨어로 구현되기 때문에 새로운 소재나 기술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상이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가 히트를 치고 하나의 멀티미디어 장르로 자리잡을 때 그것은 소니의 트리니트론과 같이 그 회사만의 독특한 얼굴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그 회사의 눈, 코, 입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가전산업의 생산규모는 세계 정상의 수준에 와 있으며 세계의 정보가전을 주도해 나갈 만한 역량은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미래의 정보가전을 이끌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역량을 이용, 우리가 히트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국제적인 표준으로 만들어 나갈 때에만 가능하다.
지금은 모든 기술을 밟으면서 나아갈 때가 아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특정한 분야에 기술투자를 집중해서 정보가전의 표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가전업체는 얼굴의 눈, 코, 입과도 같은, 인상 깊이 기억될 수 있는 특정분야를 개척해서 그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레이시아처럼 범국가적 차원에서의 투자지원과 산, 학, 연의 밀접한 공조체제 또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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