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부품업계 "지도" 바뀐다 (16);다국적 "기업사냥"

지난해 가을, 싱가포르에 있는 암페놀 아시아, 태평양지역본부 회의실. 이례적으로 본사 임원까지 참석한 이 회의는 다름아닌 한국내 직접생산체체 구축문제가 주요 의제였다.

회의는 한국시장의 확대 및 아시아시장 교두보 확보를 위해서는 단순한 마케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진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진출형태에 대해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조만간 한국이 IMF체체로 들어감에 따라 경제상황이 극도로 나빠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직접 생산설비 구축보다는 건실한 기업인수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기업인수 실무대표는 한국에 판매지사를 맡고 있는 김흥태 지사장. 김 지사장은 먼저 국내 최대의 커넥터기업인 우영에 대해 타진했다.

암페놀은 지분참여를 통한 공동생산을 제안했다. 우영은 암페놀의 제안이 합병에 가깝다고 판단, 거절했다. 대신 우영은 기술제휴를 통한 OEM생산을 제시, 결국 양측의 협상은 무산됐다.

암페놀은 우영의 거절로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을 찾기로 했다.

암페놀의 이러한 움직임에 10여개사가 넘는 기업들이 찾아왔다. 일부 기업들은 스스로 합병을 원하기도 했다.

암페놀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IMF체제에 접어든 한국 기업들의 재무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암페놀은 여러 업체를 저울질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대신전자정밀과 손을 잡았다.

암페놀은 대신전자정밀의 지분 70%를 갖는 조건으로 합작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인수라는 시각도 갖고 있다. 실제로 암페놀과 대신전자정밀은 70% 인수금액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있으며 향후 투자금액에 대해서만 공개하고 있다.

암페놀과 대신전자정밀의 합작은 다국적 기업이 국내 기업사냥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인수를 통해 다국적 기업들의 체중 늘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기업사냥은 철저하고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이 현재 IMF체제에 있어 장기적인 시장침체가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어려움은 갈수록 심각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구원요청을 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한국버그전자의 이흥식 사장은 『다국적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인수를 주요 경영지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유리한 조건에서의 기업인수는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이 IMF체제를 맞고 있는 것에 대해 다국적 기업들은 이를 호기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버그전자도 기업인수 검토에 대해 숨기지 않고 있다. 한국버그전자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몇몇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데 괜찮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지분참여를 통한 사냥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제휴사가 부쩍 늘어나 10여개 업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국적 기업도 있다.

다국적 기업의 한 관계자는 『최근 다국적 기업들과 한국 기업간의 전략적 제휴는 합병수순을 밟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자금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이 1차 타깃 대상이다』고 최근의 다국적 기업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기업인수를 통한 한국내 몸집 불리기에 돌입한 다국적 기업들의 행보는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양봉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