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가정용PC업체인 패커드벨NEC가 판매부진과 시장점유율 하락,최고경영자(CEO)의 돌연한 사임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베니 알라젬회장의 뒤를 이어 CEO로 내정된 알렌 쿠더가 자신의 최우선 과제는 매출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놓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회사의 수익구조 개선은 가장 절박한 문제.또 최대 주주인 NEC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주변에서는 관심과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패커드벨 주주인 프랑스 그룹 불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있었던 알렌 쿠더는 올해 계획하고 있는 기업공개(IPO)시기나 사업전략등에 관해 아직 명확한 답변을 하기에는 이르다며 쏟아지는 언론의 질문을 피했다.
그러나 『PC사업에서 성장없는 미래는 없다.매출이 계속 감소한다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NEC,불그룹과 협의해 한달내에 구조조정 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해 정상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신속한 난국 수습방안을 약속했다.
최고사령탑의 교체에 곧이어 이 회사 지분의 49%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인 NEC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패커드벨NEC를 자회사로 만들어 경영권을 강화할 방침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때 미국 가정용 PC시장의 성공신화를 만들며 돌풍을 일으켰던 패커드벨이 판매부진과 시장점유율 하락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 극심한 가격경쟁과 이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 마련이 없었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업체들보다 한발 앞서 저가PC시대를 열었던 패커드벨은 잠시동안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창립이래 큰 이익을 기록한 적이 별로 없었다.특히 최근 2,3년동안은 거의 밑지는 장사였다.
여기에 경쟁업체들은 무차별적인 저가 공세로 패커드벨의 입지를 위협해 왔고 시장점유율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가격경쟁을 선도했던 업체가 결국 치열해 진 가격경쟁에서 쓰라림을 맛본 것이다.
이 결과 지난해 1.4분기 22.9%하던 미국 가정용 PC시장 점유율은 급기야 1년뒤인 올 1.4분기 17.3%로 급락했고 판매량도 51만8천대에서 43만 8천대로 15.5%가 감소했다.
패커드벨이 가정용 시장에 너무 의존했던 것도 위기의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쟁업체들이 최대한 제조비용을 줄여 가격경쟁에 따른 마진율 하락에 대응하면서 기업쪽으로 고객기반을 넓힘으로써 가정용시장과의 균형을 맞춰 나간 반면 패커드벨은 가정용시장에서의 명성을 기업시장으로까지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NEC와 합쳐 지면서 기업판매에 초점을 맞추기는 했으나 소매시장 위축에 효과적으로 대처할수 없었던 것이다.
패커드벨은 이미 지난 96년 2월 NEC와 그룹 불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으면서 한차례 위기를 넘긴 바 있다.당시 패커드벨은 일본 NEC로부터 2억8천여만달러를 현금으로 지원받는 한편 불로부터는 산하업체인 제니스 데이터시스템스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흡수했다. 그후 6월에는 NEC의 해외 PC사업부문과 합쳐져 패커드벨NEC로 재탄생하면서 세계 최대업체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고 결국 패커드벨의 창업자이자 지난 11년동안 회사를 이끌어 왔던 알라젬회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 나기에 이르렀다.
그는 사임이유를 주주들(NEC,그룹 불)간의 근본적인 의견차이라고 설명했지만 계속되는 점유율 하락과 이익을 내지 못하는 데 대한 이사회의 압력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그도 역시 회사의 성장세를 유지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고 말해 결국 경영부진에 대한 문책성이 컸음을 시인했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11년전 패커드벨을 설립한 알라젬회장은 그야말로 기업성쇠의 주역이다. 가정용PC시장에서 컴팩과 함께 저가화를 주도,패커드벨을 일약 정상에 올려 놓았고 위기의 순간에서는 NEC,불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지원을 이끌어 냈다.
그는 가정용시장에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업체명도 자사가 휴렛패커드및 전화업체(벨)와 관련있다는 친근함을 소비자들에게 주는 의미에서 패커드벨로 짓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결국 그에게 불명예 퇴진이라는 멍에를 지우고 만 것이다.
알마젬회장의 사임이 패커드벨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하지만 최고사령탑의 교체와 구조조정등으로 당분간 과도기를 겪을 것만은 분명하다.
시장분석가들은 미국 PC시장이 앞으로 일부 메이저업체들에 의해 통합되는 추세로 가게 될 것이라며 불행히도 패커드벨은 PC시장의 주요무대에서 계속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여전히 이 회사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커드벨NEC는 아직까지 가정용PC시장의 선두대열을 지키고 있다.다시 매출을 늘리고 재정상태를 안정시켜 부동의 입지를 다지느냐 아니면 대열에서 낙오하느냐는 앞으로 신임CEO의 몫이다.
패커드벨은 지난 5월에 저가 PC제품에 인텔 호환CPU인 사이릭스칩을 장착할 방침이라고 밝혀 제품 전략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호환칩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후 지난달 초에는 이를 장착한 6백99달러짜리 초저가 제품을 내놓고 시장의 권토중래를 다짐하고 있다.
정상을 차지하기 보다 유지하기가 얼마나 더 힘든지를 보여주고 있는 패커드벨.사령탑의 교체와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 주목된다.
<구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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