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의 증가추세가 이제 구조조정 과정의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수용하기에는 도를 넘는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 올 가을경이면 봇물 터지듯 더 많은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자칫 구조조정이 국내 경제의 미래를 무너뜨리는 위험마저 염려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정리해고의 소리를 높여 세인의 관심을 끄는 생산직 노동자들과는 달리 소리소문 없이 실업자 대열에 휩쓸리는 고학력층의 문제는 단순히 개개인들의 고통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보통신업계만 하더라도 기업의 부도, 소문없는 감원 등으로 인한 실직이 꼬리를 물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신규채용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이 부문 진출을 꿈꾸던 대학 졸업자들이 모두 주저앉아 버렸다.
당장은 인력이 넘치고 있지만 경제가 회생되려면 무엇보다도 정보통신분야의 훈련된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정보통신분야의 주 소비층인 이들이 소비여력을 갖춰야 생산활동도 뒷받침될 수 있다.
최근 패키지 소프트웨어, 특히 게임 소프트웨어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소비가 위축된 데다 대형 유통업체의 도산으로 유통망마저 거의 마비되는 상황을 맞아 막대한 개발비만 공중에 뜨고 기업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소비 위축이 유통업을 죽이고 그로 인해 개발자들이 일손을 놓은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PC업계도 마찬가지다. 내수시장은 바닥모를 수렁으로 빠져들고 그렇다고 해외시장 개척도 여의치 않다. 그러다보니 가격경쟁은 극심해지고 따라서 채산성은 악화될 대로 악화돼 기업체질이 현 상황을 버텨내기에는 너무 허약해지고 있다. 자금회전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또다시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소비는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불가피해진다. 소비할 대중이 사라지고 나면 유통업도, 생산도 발붙일 자리를 잃어 기술개발은 고사하고 산업 자체가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산업기반이 붕괴된 후에는 설사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고 체질을 개선하더라도 이미 회복할 수 없는 기술적 낙후상태를 못 면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 나오려면 어떻게든 일자리가 창출돼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여력을 되살려 내야 한다. 그 일자리가 미래의 경제력, 국제경쟁력을 가늠하게 될 정보통신분야 인력을 훈련하는 일이라면 더욱 바람직하다. 저학력층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제까지 정부가 내놓은 취로사업 일감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학력 실업자들을 그런 일감으로 내모는 것은 본인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사회적으로도 낭비일 뿐이다. 취로사업이 노동능력 없는 노약자나 노동의지를 잃은 부랑인들을 위한 자선사업이 아닌 바에는 그 노동의 결과가 어떻게든 국가적 자산으로 남게 해야 한다. 훈련된 노동인력을 길러내고 아울러 결과물도 산업의 인프라로 활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이미 실업기금도 어느 정도 마련됐고 IMF에서도 한국의 재정적자 확대를 웬만큼은 허용하기로 한 만큼 이제 좀더 과감한 실직자 활용 프로그램을 마련, 본격 가동시켜도 좋을 여건은 갖춰졌다. 또한 정부에서도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정보취로사업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제 그 구상을 구체화해 실천할 때다.
그동안 작업이 방대해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할 길이 없어서 미뤄왔던 각종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서두를 때다. 데이터베이스 구축에는 고급기술 못잖게 단순 입력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때는 막대한 인력이 소요된다.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 실직자는 물론 갑작스런 경제위기로 아직도 직장을 못 구한 미취업 젊은이들을 대거 흡수할 수 있다. 3D 취로사업 수준의 인건비만으로도 기꺼이 일할 실직자나 미취업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들을 활용해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면 실직자들은 개인적으로 정보통신 분야에서 훈련을 받는 것이 되고 국가는 국가적 지적재산을 사이버 시대의 확실한 산업인프라로 확보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인 실직기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정보취로사업을 서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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