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계에 「부익부 빈익빈」으로 지칭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전자, 정보통신기기의 내수 및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함에 따라 상당수 PCB업체들도 덩달아 극심한 매출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내수시장에 치중해온 중소 PCB업체들은 거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수준까지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96,97년에 걸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바 있는 일부 중견 PCB업체들은 은행권의 대출금 회수압력에 거의 넋을 놓고 있다.
지난 96년 다층PCB(MLB)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실시했던 한 중견 PCB업체 사장은 『내수부진으로 매출마저 급감하고 있는데다 설비자금을 대출해 주었던 은행이 당초 약정기한보다 대출금 상환을 앞당겨 줄 것을 요구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상당수 PCB업체들도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귀띔해주고 있다.
연초 국제결제은행(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금의 조기회수를 추진했던 은행권이 최근 들어 강제적인 퇴출선풍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다시 잔여 대출금을 갚아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안산공단, 시화공단, 남동공단에 산재해 있는 상당수 중소 PCB업체들은 흑자도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중소 PCB업체들을 부도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은행권이 추진하고 있는 강제 퇴출기업 선정작업. 1차에 이어 2차 퇴출기업 선정작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앞으로 3∼4개월 내에 이들 퇴출대상 전자업체와 거래해온 중소 PCB업체는 우선 판로가 끊기고 납품대금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안산공단의 한 PCB업체 사장은 『현재 안산공단내 입주해 있는 중소 PCB업체의 상당수가 조업률 50%를 채우기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휴가철에다 대기업의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되는 하반기로 접어들면 조업률은 더욱 떨어질 공산이 크다』고 걱정하고 있다.
평소 거래해오던 전자업체의 부도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시화공단의 한 PCB업체 사장은 『이미 10여개 중소 PCB업체가 문을 닫았고 문닫기 직전까지 몰린 업체도 부지기수』라며 국내 PCB업계에는 대규모 부도사태로 지칭되는 「10월 대란설」이 유포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다수 중소 PCB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부 중견 PCB업체들은 불황중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십수년간 오르지 PCB만을 생산해온 중견 PCB업체와 틈새시장을 중점 공략해온 특수 PCB업체들은 IMF 구제금융 시대에도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는 것.
국내 대표적인 PCB 전문업체인 대덕전자의 경우 IMF 이후 오히려 주문이 폭주, 생산라인을 24시간 돌리고 있으며 이수전자, 청주전자, 기주산업, 서광전자 등 중견 PCB업체들은 수출물량이 쇄도해 생산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세트업체들이 우수한 품질, 저렴한 가격, 안정적인 납기를 보장받을 수 있으면서 경영기반이 탄탄한 중견 전문 PCB업체에 발주를 몰아주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게 이들 업체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국내외 경제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세트업체의 PCB물량 발주가 중견업체 및 특화업체로 더욱 편중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깊어져 올 연말에는 국내 PCB업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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