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의 방송산업, 과연 속수무책 인가

정치적인 문제로 새 방송법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 방송산업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변화와 혼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지고 있다.

위성방송의 경우 국내 사업자의 발을 묶어놓고 있는 동안 외국 사업자의 독무대가 돼버렸고, 케이블TV 방송국 가운데는 아직 개국조차 하지 못한 사업자가 수두룩하다. 그나마도 최대 케이블TV 전송망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사업중단 의사를 강력히 내비치고 있어 기존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운명조차 불투명하다.

한전의 비전력사업 정리 방침에 따른 케이블TV 전송망사업 포기 움직임은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국(SO)들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와 SO들은 최근 잇따라 한전의 망사업 포기 방침 철회 및 사업권 포기시 SO들에 우선적으로 망을 불하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현실적으로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당사자인 한전이 최근 전력사업에 필수적인 전력용 기본통신망 이외에 케이블TV사업을 비롯한 통신분야는 정리한다는 구조조정 방침을 확정, 관계당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이미 업체간의 조정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는게 중론이다.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사(PP)들의 처지는 더욱 심각하다. 교육채널로서 최근 「퇴출기업」 명단에 포함된 마이TV를 비롯해 3,4개사가 부도가 난 데다 부도만 나지 않았지 직원들의 임금조차 몇 달째 주지 못하고 있는 업체도 적지 않은 등 거의 대부분의 PP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뉴스전문 채널이자 상징적인 PP인 YTN이 1천억원에 달하는 금융비용 및 누적적자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고 그 와중에서 유일한 돌파구로 여겨왔던 대주주 한전의 증자 기대는 한전의 케이블사업 정리 방침으로 물거품이 되려 하고 있다. 그런데다 정부 및 투자기관들의 지원으로 운영돼온 아리랑TV, 스포츠TV, 리빙TV, KTV 등도 지원금의 대폭 감소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YTN과 공공채널들은 저마다 자체 또는 외부기관에 용역의뢰, 이들 채널간의 통폐합을 포함한 개선방안 마련에 나서는 등 각기 자사 중심의 구도 몰아가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YTN은 최근 케이블TV 채널을 추가 허용해 줄 것과 국제위성방송 등 부가사업 육성, 차입금의 출자 전환 등 금융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영활성화 방안을 모색, 관계 요로에 전달했으며 정부도 이같은 내용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다른 PP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KTV는 최근 중앙대에 용역의뢰한 보고서를 통해 KTV를 기존대로 존치 또는 아리랑 TV와의 합병 등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아리랑TV는 내부적으로 리빙TV 등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민간채널의 경우도 이미 퇴출기업 리스트에 오른 마이TV뿐만 아니라 G사, D사, C사 등이 부도가 난 상황인데다 외자유치도 뜻대로 되지 않아 속만 태우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의 최근 새 방송법과 관련한 움직임은 크게 둔화된 것 같다. 전 정권이 벌여놓은 일을 치닥거리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처리해도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는 힘든 형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어차피 여당안만으로 제대로 끌고 갈 수 없으니 정치상황을 바꿔놓은 뒤 일을 처리하자는 속내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는 동안에 업계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민방이나 케이블TV산업이 피폐화되는 것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연계를 갖고 있는 독립프로덕션을 비롯한 하부, 유관산업까지 초토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미 IMF한파와 이로 인한 긴축 및 부도 등으로 얼마 쓰지도 못한 중고 방송장비들이 넘쳐나고 있고, 상당수가 해외로 헐 값에 팔려가고 있다. 디지털 위성방송, 디지털 지상파TV 등의 도입을 계기로 국내 방송환경이 조만간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급속하게 전환될 것이 분명한 데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종합적인 매체정책 수립은 요원해 보인다. 정권이 바뀌어도 방송산업은 계속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과 실행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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