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실리콘밸리] 성공전략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곳. 서부개척시대 이래 또 한번의 기회의 땅. 바로 실리콘밸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만 가지고 뛰어든 무일푼의 젊은이가 언젠가 뉴욕 증권시장 나스닥에서 잭팟(Jack Pot)을 터뜨릴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곳 언론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신생업체가 유리시스템즈 김종훈 회장처럼 대성공을 거둘 확률은 백만분의 6 이하라고 한다. 3년동안 도산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생존확률도 고작 3%에 불과하다. 결국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스타 탄생」을 위한 엑스트라로 머무르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운명인 셈이다. 그러나 실패할 확률이 높은 만큼 성공의 열매가 달콤하다는 것이야말로 실리콘밸리가 전세계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다.

백만장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난 71년 개설된 컴퓨터 네트워크상의 증권시장 나스닥과 회사에 기여한 만큼 주식을 나눠 갖는 스톡옵션제도다. 미국에서는 미리 정해진 액면가가 없는 대신 투자자가 업체를 인수할 당시의 기업가치에 따라 매번 주가가 달라지는 무액면주가 허용된다. 대부분의 벤처업체들은 주당 1센트의 주식으로 시작한다. 만일 창업자가 자본금 1만달러로 회사를 설립한다면 무려 1백만주를 갖게 되는 셈이다.

5년 후 이 업체가 나스닥에 상장될 때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줄을 서고 일반투자자의 매수주문이 밀려 당일 종가가 7달러로 치솟게 된다면 주식가치는 7백배로 증폭되고 창업자는 단숨에 7백만달러를 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그런 엄청난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나스닥에 상장되는 이른바 「고잉 퍼블릭(Going Public)」까지 7단계를 거쳐야 한다. 창업가(Entrepreneur)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안정된 대기업 대신 실리콘밸리를 선택했다면 우선 회사의 간판을 내거는 스타트업(Start-up) 단계가 출발선이다. 사실 이곳에서 벤처라는 이름을 명함에 새겨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벤처 캐피털리스트」이고, 우리가 흔히 벤처라고 부르는 신생업체들은 보통 「스타트업 컴퍼니」라고 불린다.

다음엔 허리띠를 졸라매고 혼자 힘으로 버텨내는 이른바 부트 스트랩(Boot Strap) 단계가 기다린다. 신생업체가 겪는 갖가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이른바 벤처도우미를 찾아가는 것도 방법의 하나. 킥 스타트(Kick Start), 벤처원(Venture), 벤처캐피털 리소스 같이 알려진 곳 이외에도 요즘은 사이버공간에 문을 여는 도우미업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여기까지 무사히 통과한 업체들만이 시드(Seed) 단계로 넘어가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수 있다. 이 때 만나야 할 사람이 에인절(Angel)이다. 에인절은 말 그대로 천사같은 마음씨로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개인투자자들로 보통 10만달러에서 50만달러 정도를 투자한다.

이제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가면서 본격적으로 벤처캐피털을 유치하는 퍼스트 라운드(First Round)로 들어선다. 이 단계에서 중도탈락하는 업체들이 가장 많다. 한국에서 건너간 무명업체에 누가 선뜻 돈을 대줄 것인가. 종합기술금융(KTB)을 필두로 동양그룹이 설립한 알토스, 다이아몬드사 이종문 회장이 운영하는 암백스 등이 활동중이지만 이스라엘이나 중국에 비하면 한국계 벤처캐피털의 수는 턱없이 모자란다.

샌드 힐(Sand Hill)가에 가면 사이릭스를 내셔널 세미컨덕터사에 인수시킨 세빈 로젠 펀드, 자일랜드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킨 소프트컴 마이크로시스템사 등 주요 벤처캐피털 1백여개사가 밀집해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Venture Capitalist)들은 흙 속에서 진주를 가려낼 만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전망있는 벤처업체에 약 1백만달러에서 5백만달러 정도를 투입한 후 경영전략과 인사,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들을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아니라 벌처 캐피털리스트(Vulture Capitalist)라고 부른다. 독수리처럼 재능있는 벤처업체들을 먹이 삼아 부를 축적한다는 냉소적인 표현이다.

벤처자본가들이 운용하는 돈은 모건 클릭크, 알렉스 브라운 같은 투자은행이나 대학에서 출연한 대형펀드들. 국내 창투사처럼 월급제가 아니라 파트너십에 따라 투자지분의 20∼25%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벤처업체를 백만장자로 만드는 순간 자신도 돈방석에 올라앉는 것이다.

이들의 책상에 쌓이는 비즈니스 플랜은 1년에 4백∼5백개. 이중 대략 10개 정도만 투자업체로 선정된다. 인맥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벤처 캐피털리스트에게 비즈니스 플랜을 건네주는 일조차 간단치 않다. 1 대 1의 면담이 이뤄지려면 약속을 잡는 데만 1개월이 걸리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는데 또 1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퍼스트 라운드에 무사히 올라간다면 그 다음 투자자금을 1천만달러로 끌어올리는 세컨드 라운드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시키는 메자닌(Mezzanine Stage)단계를 거쳐 기관투자가의 도움으로 나스닥에 상장되는 마지막 관문까지도 도전해 볼 수 있다.

물론 스타트업부터 고잉 퍼블릭까지 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그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혁신적인 경영 마인드와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누구나 제2의 제리양이 될 수 있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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