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4기가비트(Gb)급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초미세 공정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 기술적 우위를 확실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 반도체시장의 가격경쟁 대열에서도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만큼은 우리가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연 쾌거로 찬사를 받을 만하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개발에 성공한 기술은 4Gb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회로선폭 0.13(미크론:1백만분의 1m)급 초미세 가공기술로 이를 모든 공정에 적용할 수 있어 가격경쟁의 최대 요소인 생산수율을 현저히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이 정도의 가공기술은 경쟁사인 일본의 반도체업체들도 이론적 작업을 마친 실험실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생산에 직접 적용 가능한 풀리 워킹(Fully Working) 수준의 개발은 이번 삼성전자가 최초로 이룩했다.
세계 반도체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재의 장비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온 고난도 기술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노광장비(KrF)로 개발한 점만으로도 세계 반도체 소자 및 장비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될 만큼 이번 삼성전자의 개발기술은 여러 면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고용량, 초고속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세계 컴퓨터시장에서 삼성의 이번 공정기술 개발은 4Gb 반도체시대를 앞당기며 저용량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을 대폭 낮춤으로써 컴퓨터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이같은 기술 개발은 반도체 분야에서의 시장독점 가능성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경쟁이 늘상 그렇듯 다음 단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들이 최근 속속 메모리 분야에서 손을 떼거나 사업을 정리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막대한 투자를 해봐야 곧이어 경쟁제품이 등장하고 투자기술은 곧 보편적 기술로 내려앉으며 기술투자를 하지 않은 개도국 기업들의 독무대로 이어지는 메모리 반도체시장의 속성이 투자의욕을 감퇴시키는 가장 큰 요인인 듯하다. 범용성으로 인해 시장은 크지만 그만큼 막대한 투자에 따르는 위험요소도 크기 때문인 것이다.
미, 일 반도체 업체들은 갈수록 비메모리의 비중을 키우고 있다. 다른 산업이 커져가면서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겠지만 그보다는 갈수록 투기화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투자가 부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로서는 시장독점력이 큰 메모리 반도체 편중으로 인해 주력시장인 미국의 반도체업계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고 있어 그 또한 부담이다.
국내 반도체업체들도 물론 비메모리 분야에 투자를 않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알파칩과 MML, LG반도체의 멀티미디어 복합칩과 자바프로세서, 현대전자의 QPSK칩과 CMOS 이미지 센서 등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비메모리 제품으로 꼽힌다.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균형발전은 3∼4년 전부터 반복되고 있는 메모리 가격경쟁에 대응하려는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숙원이기도 하다. 이제 서서히 투자의 결실이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처음부터 세계시장 경쟁만을 염두에 둬야할 만큼 내수기반이 취약한 현실로 인해 개발의 불이 강하게 불고 있지는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내수기반 취약만 탓할 일도 아니다. 국내의 가전, 통신, 자동차 등 비메모리 수요처는 거의 외국 반도체업체들의 독무대이다시피 한 실정이다. 특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통신 분야는 아직 국내 반도체업체들에 많은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 업체간 수요, 공급에서의 제휴 등 협력을 이룬다면 개발의 동기부여도 그만큼 수월해질 것이다.
비메모리는 메모리에 비해 개발자들의 사회적 관심과 창의력이 더욱 요구되는 분야다. 마케팅 분야와의 사전협력 또한 절실한 분야다. 개발실의 분위기부터 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차이를 경영진들이 얼마나 인정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느냐가 비메모리 분야에서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이제 메모리 분야에서 거둔 쾌거를 비메모리로 확장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에 적극 나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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