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표시장치(LCD)업계는 구조조정중.」
반도체 다음으로 우리 산업을 이끌어갈 주역으로 기대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LCD업계는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말 불어닥친 IMF한파와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으로 LCD업계는 올들어 투자를 전면 동결하면서 구조조정의 길을 밟고 있다.
IMF 이후 국내 LCD업체들의 투자는 당초 계획대비 15억달러에서 1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LCD업체들의 설비감축은 지난해 22억달러에 달한 것에 비해 무려 95.5%나 감소하면서 LCD사업에 나선 이래 가장 최저의 투자액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투자를 보류할 정도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LCD업체들은 정부가 추진중인 기업 구조조정과 맞물려 생존차원에서 구조조정의 페달을 빠르게 밟고 있는 중이다.
현재 LCD업계가 벌이고 있는 구조조정은 크게 두가지. 아예 LCD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외국업체들의 자본을 유입하는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오리온전기는 오랫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LCD사업을 정리키로 확정해 대우그룹의 구조조정계획에 포함시켰다. 지난 92년 한독의 LCD사업을 인수하면서 TN, STN급의 LCD 생산에 나선 이래로 1천억원 이상을 투자한 오리온전기는 그러나 매출부진으로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결국 이 사업을 올해말까지만 유지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이미 협력사에 올해말까지 LCD사업을 유지하면서 내년에 중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통보하고 LCD설비를 인수할 외국업체들을 물색하고 있는 데 현재 대만 J사 등 몇몇 업체들과 접촉을 벌이고 있다.
또한 현대전자도 반도체와 통신사업을 제외하고 사업본부별로 사업을 정리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발주중에 있는 3.5세대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생산라인의 도입을 보류하면서 TN, STN급 LCD사업의 정리와 함께 TFT LCD사업에선 외국자본을 유입, 합작방식으로 사업을 해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 외신에 현대전자의 LCD사업 정리설이 수차례 보도됐는데 현재 사업본부장이 전권을 갖고 대만업체들을 비롯해 필립스와 일본 소니사 등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반도체도 지난해 경영성적이 안좋으면서 LG그룹의 LCD사업과 관련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생산과 영업을 전자와 반도체로 이원화했던 LG그룹은 영업을 LG전자로 일원화했다. LG전자는 현재 자본유입에 나서 외국투자사를 물색중에 있는데 실무선에서 필립스 등과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한국전자도 투자를 전면 보류하면서 대만업체들과 자본합작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삼성전관도 LCD의 유휴설비를 매각키로 하고 현재 설비 인수업체를 물색중에 있다.
LCD업체들이 일제히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해만 해도 국내 LCD산업은 반도체에 이어 미래를 대표하는 첨단산업으로 각광받으면서 큰폭의 성장을 기록해왔다.
국내 LCD업체들은 94년에서 96년까지 1조8천억원이라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하면서 TFT LCD사업에선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92년도에 불과 1천만달러를 생산해 4백60만달러어치를 수출한 데 그쳤던 LCD산업은 지난해 12억달러어치를 생산해 11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불과 6년 만에 LCD산업의 생산과 수출은 각각 1백20배와 2백40배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TFT LCD분야는 지난해 10억달러어치를 생산, 9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지난 95년 처음으로 TFT LCD 생산에 나서 겨우 5천만달러어치를 수출한 것과 비교하면 불과 3년 만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LCD산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현재 LCD사업 중에서 TN, STN급과 같은 저가의 LCD시장은 이미 대만에 모든 시장을 넘겨주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앞으로 2∼3년내에 TFT LCD시장 마저 대만에 2위 자리를 넘겨주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등이 IMF한파와 반도체가격 폭락으로 투자자본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 라인에 수억달러의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고 있는 TFT LCD의 생산설비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반면 대만업체들이 앞다퉈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업체들은 지난 97년만 해도 22억달러 가량을 투자했으나 올해들어선 당초 계획한 15억달러에 크게 못미친 1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반해 대만업체들은 향후 2∼3년내에 11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만업체들의 투자 뒤에는 일본업체들의 입김이 서려 있어 우리 업체들의 입지를 상당히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만 중화영관은 일본 ADI와 협력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도시바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기술을 이전받고 있으며 에이서는 IBM, 동원광전(TECO)은 NEC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업체들의 기술이전은 일본의 국내사정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결국에는 한국업체들을 배제하기 위한 전략도 숨어 있다.
즉 일본업체들은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투자할 여력이 없는 데 따라 기술을 제공하면서 로열티를 챙기는 한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물량을 조달하는 생산기지로 활용할 전략 때문에 대만업체들과 기술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대만업체들의 투자는 위협적이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크게 뒤떨어지기 때문에 이른 시일내 우리업체를 뒤쫓아 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관계자들이 많다.
LG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만업체들이 반도체에 투자해 D램의 생산에 나서고 있으나 생산기술 측면에서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듯이 LCD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대만업체들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이 안정되어 있을 땐 이같은 예측이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현재 국내업체들이 구조조정중에 있는 점과 맞물려 대만업체들이 우리와 비슷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인력을 감축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경우 지난해 일어났던 반도체의 스파이 사건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우리의 우수한 기술인력들이 대만업체에 취업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H사의 한 관계자는 『사업방향이 불안정하면서 신분상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어 예전처럼 회사에 충성하기보다는 앞 일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대만의 헤드헌터들이 국내에 들어와 LCD분야의 관련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일본업체와 대만업체 사이에서 국내업체들의 입지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말이 시사적이다.
『현재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삼성전자만이 그런 대로 굴러가고 있지만 여타 경쟁업체들이 정리되거나 외국업체들의 손에 넘어갔을 경우 일본업체들의 견제 속에서 삼성전자만이 홀로 남아 세계 제4위라는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국내업체들의 경쟁상대가 있어야 일본 및 대만 업체들과의 경쟁도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LCD에서 밀려날 경우 모니터와 그 다음의 디스플레이시장에서도 영원히 뒤처지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브라운관 분야에선 우리나라가 세계 제1위의 생산국 위치를 지키고 있다』면서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관련 디스플레이산업이 살아나줘야만 가능한데 TFT LCD에서 도태될 경우 브라운관 이후의 디스플레이 세대를 준비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LCD산업에 대해선 기업에만 맡기기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시 산업정책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눈앞의 구조조정에 신경을 쓰다가 미래산업인 LCD산업을 모두 잃을 경우 우리의 21세기 산업을 놓치게 되고 그 피해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구조조정에 치우쳐 우리의 경쟁력있는 산업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다시 이 산업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의 지원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막대한 투자비가 뒤따른 TFT LCD산업에 대해 기업들의 투자가 이뤄지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투자를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용어해설-LCD
1888년 오스트리아의 F.Reinitzer에 의해 처음 발견된 액정은 1968년 미국 RCA사에 의해 디스플레이에 응용됐다. 73년에 전자계산기, 전자시계에 적용된 액정은 1986년 이후 STN LCD와 소형 TFT LCD가 실용화됐다.
90년대들어 10인치 TFT LCD의 양산화가 실현되면서 노트북PC의 대표적인 디스플레이로 자리잡고 CRT를 대체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LCD는 2개의 얇은 유리판 사이에 고체와 액체의 중간물질인 액정을 주입해 상하 유리판위 전극의 전압차로 액정분자의 배열을 변화시킴으로써 명암을 발생시켜 숫자나 영상을 표시하는 일종의 광스위치 현상을 이용한 소자다. 구동방법에 따라 수동 매트릭스 방식과 능동 매트릭스 방식으로 분류하는 데 수동 매트릭스 방식에는 TN(Twisted Nematic)과 STN(Super-Twisted Nematic)이 있으며 능동 매트릭스 방식에는 TFT(Thin Film Transistor) 등이 있다.
현재 LCD는 전자시계, 전자계산기, 액정TV, 노트북PC 등 전자제품에서 지동차, 항공기의 속도표시판 및 운행시스템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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