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瑢宰 미디어솔루션 대표
얼마 전 모 기관에서 큰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그런데 많은 중소기업들이 직접 참여할 대기업보다 더 분주하다. 왜 그럴까. 이유는 중소기업이 그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는 바람에 차선책으로 수주 가능성이 있는 대기업을 찾아 조금이나마 일감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큰 프로젝트가 뜨면 으례 중소기업이 더 바쁜 것이다. 다행히 자사와 닿는 대기업이 프로젝트를 따낼 경우 대성공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보다는 운이 따라야 하는 게 우스운 현실이다.
한 예를 들어 어떤 중소기업이 획기적이고 훌륭한 기술을 개발해 마케팅에 나섰다 하더라도 그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프로젝트 발주기관조차 회사규모, 자본금, 인원규모, 매출액 등등 중소기업이 갖추기 어려운 조건 등을 내세워 직접 참여를 배제시킨다. 결과는 그 프로젝트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대기업이 일단 수주한 뒤 기술력을 불문하고 말 잘 듣는(?) 중소기업에 일감을 줘 버리면 모든 게 끝이다. 훌륭한 기술을 지니고 있는 중소기업은 자기의 파트너가 떨어지면 참여할 길이 원천봉쇄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한 대기업은 중간에서 많은 이득을 챙기게 된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우수리쯤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 돈이 중소기업에 곧장 간다면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된다.
우리는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벤처기업과 관련된 수많은 내용 등을 접한다. 특히 IMF체제하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벤처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진정으로 벤처기업이 마음 놓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는지 한번쯤 되새겨 봄직하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먹여주고 달래는 등 끊임없이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무사히 성장할 수 있다. 무작정 낳기만 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불행인 것이다.
최근 벤처창업 붐으로 수많은 기업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창업에만 신경을 썼지 이들이 훌륭한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그것을 팔기는 매우 힘든다. 판로지원이 없고 제한된 시장 속에서 창업만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의 경우 하루에도 많은 기업이 창업되고 있는데 이들 창업자의 상당수가 전문적인 경영 마인드가 없는 순수 엔지니어 출신이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평범한 개발인력일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훌륭한 인적자원이고 앞으로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수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거의 중소기업에서 개발된다는 점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벤처기업은 우수한 엔지니어가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며, 이같은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 역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국내 시장환경은 대기업의 독무대로 전락해 중소기업이 이 틈새를 비집고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수한 벤처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몇 가지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선 독창적이고 우수한 기술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 해당 기술에 대한 정확한 마케팅 대안이 있어야 한다. 또한 기술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엔지니어적 성향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경영 마인드 및 법, 제도 등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하고 내수시각이 아니라 해외시장에 타깃을 맞춰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창업기업을 위해 단순히 자금만 밀어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오히려 건전한 중소기업의 마인드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금지원보다는 그 기금으로 벤처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신규시장을 창출해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다. 기술력은 뒷전이고 로비와 편법에 강한 기업을 걸러내 오직 기술력에 밑바탕을 둔 페어플레이만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자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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