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출전선의 明暗 왜 엇갈리나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아갔던 외환사정 악화로 외자유치와 수출이 우리 경제의 최대 해법으로 등장한 이후 반년을 온나라가 분주하게 보냈으나 아직 외자유치는 투자유치보다 채무증가에 의존하는 수준에 머물고 수출전선에는 환율폭등으로 잠깐 반짝하던 빛이 사라지며 어두움이 밀려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환율폭등으로 수출에 덕을 보던 분야는 일본의 엔저현상으로 다시 위기감에 휩싸이고 여전히 저가품에 의존하던 일부 수출품은 주력시장인 아시아 각국의 경기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첨단의 빛이 사그라든 16MD램의 생산기지를 이전하지 못한 채 여전히 품안에 끌어안고 있던 반도체 부문은 곧 닥칠 심각한 가격경쟁에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수입선 다변화 품목으로 묶여 국내산업이 보호를 받아온 공작기계 부문은 수입선 다변화 해제와 함께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월등히 앞선 일본제품이 물밀 듯이 밀려올 것이라는 전망에 대비하느라 뒤늦게 분주하다.

그러나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합정보통신망(ISDN)용 단말기 및 장비는 수출주문이 쇄도해 신바람이 나 있다고 한다. 제품뿐만 아니라 기술수출도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수출전선에서 이처럼 명암이 엇갈리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답은 결국 기술력이다.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는 제품만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수출전선에서 경쟁력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다.

국제무역기구(WTO)체제에서부터 국제통화기금(IMF)체제까지 국내외적으로 잇단 환경변화에 국내 기업들은 최근 2∼3년을 정신없이 끌려다니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과보호 속에 양육되던 국내 기업들이 갑자기 홀로 세계시장이라는 들판으로 내몰리는 모습은 마치 취학연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품안에서만 맴돌던 아이가 사춘기에 이르자 갑자기 세상 속으로 내던져지는 형국이다.

그동안 아쉬우면 언제든 정부 지원이 뒤따르다보니 기술개발은 더뎠다. 필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게으름을 부렸다고 볼 수 있다. 신규 사업확장에만 열을 올리느라 기술개발 투자는 늘 후순위였던 것이다. 최근의 국내경기 침체는 그나마 기술개발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술개발 없이는 더 이상 개방된 세계 속에서 기업이 생존할 입지가 없다. 마케팅 분야에서의 유연성 제고와 끊임없는 기술개발만이 기업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다.

전자, 정보통신산업은 특히 최첨단의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각국의 각 기업들이 생존을 걸고 기술개발에 나서는 분야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기업들은 투자여력만을 한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술에는 막대한 자본투자가 필요한 기반기술도 있지만 마케팅과 결합, 수요자 요구가 잘 반영된 재가공 기술, 응용기술도 있다. 그런 기술이야말로 부가가치를 높이며 투자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첨단기술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기술선진국의 대열에 거뜬히 올라선 일본이 기술개발 초기에 택한 전략이 바로 그같은 응용기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응용기술로 자국 기술자들을 훈련시키고 사회적 기술력과 경제력을 축적시켜 오늘날에는 기반기술에서도 세계표준을 선도하는 입장에 섰음을 국내기업, 특히 대기업들은 상기할 필요가 크다.

최근 상황에 밀려 경영구조 개선에 나선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외양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단 한판에 승부를 끝내고 싶은 욕망에 너무 조급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는 지났다고 입으로는 외면서도 여전히 고속성장을 보장해주던 수출드라이브 정책하에서의 물량위주 사고에서 헤어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보인다. 아무래도 단일 품목을 대량으로 판매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이 쉬운 길임은 분명하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쉬운 길에는 늘 위험한 함정이 있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정부의 과보호에서 벗어나게 된 우리 기업들로서는 이제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무모한 모험을 할 형편이 아니다. 작은 기술이라도 다양하게 개발하고 세심하게 관리하는 겸손한 경영, 성숙한 경영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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