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냉방기기] "엘리뇨"도 꽁꽁 얼린다

지난 4월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이상 고온현상이 올여름 내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냉방기기시장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 및 정부의 에어컨에 대한 특별소비세 상향조정 등 악재로 인해 올해 약 40% 가량의 수요감소를 예상했던 에어컨과 선풍기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IMF라는 적군과 엘니뇨라는 응원군을 동시에 만난 국내 냉방기기시장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를 보일지 관련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있다.

「과연 올 여름에 에어컨 품귀현상이 발생할까.」

최근 국내 에어컨업계의 최대 관심은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이상고온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지난해말 불어닥친 IMF 한파를 시작으로 에어컨 특소세 인상 등의 악재가 줄을 잇더니 최근에는 엘니뇨 현상이라는 호재가 등장, 올 에어컨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서 업계에 반가운 소식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 보급률이 아직 25%에 불과해 성장가능성이 높은데다 최근 수년간 매년 20% 이상의 고속성장을 지속해 지난해에는 1조7천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는 등 TV를 제치고 시장규모가 가장 큰 가전제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에어컨시장에 거는 가전업계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오르고 있다.

올해 국내 에어컨시장은 지난해(1백40만대)보다 10만대 가량 늘어난 1백50만대 정도의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하지만 지난해말 불어닥친 IMF 한파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연초에 에어컨에 대한 특소세 상향조정안이 발표되면서 이같은 수요예측은 지난해보다 40∼50% 가량 줄어든 70만∼80만대 규모로 수정했다.

시장규모 100만~110만대 국내 에어컨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LG전자와 삼성전자를 필두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이미 올해 국내시장에 판매할 에어컨 생산물량을 지난해의 절반 정도로 줄여잡는 등 국내 에어컨업체들은 이같은 수요예측에 따라 올해 생산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IMF를 맞아 가뜩이나 악화되고 있는 자금사정을 감안, 미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온 컴프레서와 마이콤 등 핵심부품에 대한 재고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은 지난 4월부터 엄습한 이상 고온현상으로 인해 또다시 수정돼야 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영국 BSRIA는 올해 국내 에어컨시장이 룸에어컨 39만3천대, 패키지에어컨 44만대를 비롯해 창문형 에어컨과 이동식 에어컨까지 포함, 총 91만대 가량의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때이른 무더위가 지속되고 「올 여름에는 한밤에도 무더위가 지속되는 열대야 현상이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이어지면서 국내 에어컨업체들은 이보다 10만∼20만대 가량 늘어난 1백만∼1백10만대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에어컨 생산을 다시 늘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에어컨의 핵심부품인 컴프레서와 마이컴을 새로 주문해서 생산하고 제품을 출하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길게는 3개월까지 걸려 지금부터 생산준비에 돌입하더라도 올 여름 성수기가 지나서야 출시가 가능, 성수기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 여름에 지난 94년에 발생했던 것과 같은 극심한 에어컨 품귀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에어컨시장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급변하면서 IMF로 인해 극심한 침체에 빠져있는 국내 에어컨업계의 판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도기계, 범양냉방 등 전문업체들의 부도에 이어 두원냉기, 경원세기 등도 IMF 한파로 인한 자금난으로 부진한 양상을 보이는 등 대부분의 중견 전문업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난해 국내 에어컨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에어컨사업을 본격 추진하려던 중소업체들의 태도도 돌변, 아남전자, 동양매직, 롯데기공 등 일부 업체만이 기존 업체들로부터 소량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공급받아 판매에 나서고 있을 뿐 대다수의 업체들이 손을 놓고 있는 등 신규업체 진출이 거의 막혀있는 상태다.

그렇지만 중견 전문업체들은 올 여름 엘니뇨 현상이 지속돼 에어컨 품귀현상이 발생해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상황은 결국 전문업체들이 부진할 때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대기업들과 예약판매 등의 초기시장에서의 보였던 부진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성수기 판매확대로 만회하려는 중견 전문업체들간 치열한 판촉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일단 내수시장이 지난해보다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고 해외시장 공략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내수시장에서는 IMF한파로 인해 경기부진이 지속되고 소비수요가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이 「가격은 낮으면서도 품질은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해 기존 제품보다 10∼20% 가량 저렴한 IMF형 제품을 속속 출시하는 동시에 대규모의 할인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bps0~20%싼 제품 속속 출시 LG전자는 올해 총 36만개 가량을 국내시장에 판매,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킨다는 계획아래 「월드컵 기념품 경품잔치」 및 「오래된 에어컨을 찾습니다」 등 다양한 판촉행사를 실시한데 이어 최근에는 프랑스 월드컵의 스폰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프리미엄 에어컨 할인판매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어려워진 시장여건에서도 실속형 제품출시 및 AS강화를 비롯한 소비자 밀착형 마케팅으로 적극적인 시장수요 창출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지난 2차 예약판매 때부터 10∼12%의 할인판매 및 6개월 무이자 할부판매를 실시한 데 이어 소비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실속형 제품을 적극 도입하는 등 소비자의 가격부담을 최소화해 잠재수요를 최대한 끌어내 올해 총 28만대 가량을 판매할 계획이다.

이들 대기업의 뒤를 잇고 있는 업체는 만도기계와 대우전자, 대우캐리어 등 3개사. 이들 업체가 3위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순위다툼은 올해 에어컨시장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만도기계는 지난 4월 중순부터 엘니뇨에 의한 이상 고온현상으로 수요가 다시 늘기 시작한 데 때맞춰 화의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자사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호전됨에 따라 막판 뒤집기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만도기계는 이달부터는 전제품을 대상으로 최고 18%까지 할인혜택을 주는 시즌 할인판매에 돌입하는 한편 올해 생산계획을 당초의 9만대에서 14만대로 확대, 에어컨 품귀가 예상되는 성수기를 대비하고 있다.

대우캐리어도 올해 자체 영업망을 강화하고 대우전자에 대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공급을 지속, 5만7천대의 패키지에어컨과 9만9천대의 룸에어컨 등 총 15만6천대를 판매해 시장점유율을 LG전자와 삼성전자에 이어 3위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우캐리어는 영업인력 확충 및 대리점 지원강화, AS망 확대 등 자체 영업력를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고급형과 일반형 제품으로 이원화했던 제품군을 올해는 최고급형, 고급형, 일반형, 실속형 등 4종으로 확대하는 등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 대응해나갈 예정이다.

반면 대우전자는 아직 중국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우선은 대우캐리어와 두원냉기 등에서 생산한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고 자체 생산을 통한 본격적인 시장진입은 내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이밖에 패키지에어컨 전문업체인 경원세기는 시장상황에 따라 월단위로 생산량을 조정하는 전문업체 특유의 생산방식을 적용, 성수기 때 수요가 폭증하면 곧바로 생산물량을 확대해 올해는 지난해보다 1만대 이상 늘어난 5만대의 에어컨을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를 위해 경원세기는 순동 전기집진기를 내장, 살균력이 뛰어난 「센추리에어컨」에 대한 홍보활동에 적극 나서는 동시에 자체 개발한 스크롤 컴프레서가 세계 우수 자본재로 지정된 것을 기념 지난 4월에는 30% 한인판매에 나서는 등 판촉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엘니뇨현상은 이처럼 에어컨시장뿐만 아니라 선풍기 시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초 가전업체들이 예상한 대로라면 올해 국내 선풍기시장은 경기침체와 수요심리 위축의 여파로 지난해보다는 약 20% 정도 줄어든 2백40만대 수준. 그러나 올해는 기존 에어컨 수요가 가격부담이 적은 선풍기쪽으로 몰릴 것으로 보이는데다 엘니뇨 현상으로 올 여름이 유난히 더울 것이라는 기상관측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선풍기업체들도 이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생산라인 탄력적 운영 선풍기업체들은 지난해 재고량을 감안, 당초 생산계획을 예년의 60~70% 수준으로 낮췄으나 최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팬과 모터, 마이컴 등 중요부품을 일정정도 확보해두고 실판매가 일어나는 6월 중순 날씨의 변화를 봐서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기본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예년처럼 완제품 재고량을 안고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올해는 주력제품이 비교적 생산기일이 짧은 중저가 기계식 위주로 형성되고 있어 이같은 방법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내 최대 선풍기업체인 신일산업은 올해 약 60만대를 생산해 지난해 유통재고까지 포함, 약 80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운데 이어 상황의 변화에 따라 20만∼30만대를 추가로 생산할 수 있도록 부품 및 인력에 여유를 두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주문이 꾸준히 늘고 있는 판매가 5만∼6만원대 중저가 제품을 위주로 생산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한일전기도 무재고경영의 원칙아래 약 65만대를 판매할 계획을 세웠는데 날씨변화의 추이를 봐서 생산라인을 유동적으로 운영, 기민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중소업체들과 OEM방식으로 선풍기를 생산하고 있는 가전3사도 올해 총 1백20만대를 판매할 계획으로 생산계획을 마련, 생산에 나서고 있으나 이달 중순께 시장상황을 봐서 추가생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결국 올해 선풍기시장은 실판매가 일어나는 6월의 기상변화에 제조업체들이 얼마나 발빠르게 대응하느냐에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김순기, 정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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