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의 다국적화와 경쟁력

IMF체제가 우리의 기업구조, 나아가 경제관념을 바꾸도록 강제하기 시작한 지 반년이 다 돼가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한 사안들이 즐비해 경제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국내외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과 함께 세계경제체제가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인데 기업이나 금융구조가 제대로 보조를 맞추지 못해 위기를 초래한 한국경제가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영영 대오이탈을 하고마는 것은 아니냐는 염려다.

28일자 전자신문은 이런 더딘 의식의 변화에 박차를 가하는 특집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이제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굴절된 시각으로만 봐 왔던 다국적 기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대로 보자는 의미에서 마련된 이번 특집은 그동안 국내에 들어와 영업활동을 벌이는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 첨단산업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 다국적 기업의 세계경영전략이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보여줬다.

처음엔 단지 값싼 노동력 혹은 시장잠재력만 보고 들어와 막대한 과실송금으로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져가는 데 따라 9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급속도로 현지화해 한국인 대표가 경영하는 한국법인들이 속속 국내 기업의 대열에 합류한 과정이 소개됐다. 그들은 지금의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외부로부터의 안정적 자금확보로 수출에서도 상당한 개가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시각을 바꾸면 시장이 보이는 이치를 다국적 기업들이 먼저 보여줬듯이 이제 우리도 빠르게 시각을 바꿔 열린 세계로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야 할 때다.

그동안 정부, 기업이나 일반국민의 의식이 급속한 경제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경제규모는 커졌으나 그에 걸맞은 변신을 못하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여 왔다. 갓난아기는 집안에서 보호, 육성해야 하겠지만 조금만 자라면 집밖으로 내보내 제 또래들과 어울리게 하고 차츰 집안과 사회에 대한 의무도 배워가게 해야 하며, 청소년기에는 더 강하게 사회적 의무를 가르치고 바깥세계에서 홀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살아남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과보호 부모처럼 국내 기업을 길들여 왔다. 한마디로 기업을 집안대장 노릇만 하는 버릇없는 아이로 길러온 것이다.

이제라도 기업이 바깥세상에서 덩치 크고 영악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보호막을 다 걷어내야 한다. 철들 나이가 되도록 사회적 의무는 모른 채 보호만을 요구하는 자식이 애물단지가 되듯 집안대장 노릇하는 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존재일 뿐이다.

현 정부는 집권이 예약된 시점부터 시종일관 경제의 벽을 허물고 세계 어느 나라의 기업이든 국내에 들어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아직은 제도정비가 덜 된 상태지만 빠르게 여건을 마련해가고 있다.

문제는 대중의 의식이 그만큼 빠르게 변할 것이냐와 그런 변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를 얼마나 조속히 이끌어내느냐 하는 데 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려면 논리적인 정리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에 하루아침에 국민의 의식이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화가 결국은 공정하게 주고받기를 위한 철학이라 해도 상대적 힘의 우열이 룰의 공정성에 우선할 것이라는 우려는 분명 타당성이 있다. 그런 힘의 불균형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이익을 방어할 것인지에 해답이 있어야 한다. 그 해답은 정부보다 기업이 보여줄 몫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업 스스로 불안감을 보이며 열린 사회, 경쟁의 장에 나서길 주저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또 하나 세계화가 자칫 우리의 고유성을 해치며 국가적 자아상실 현상을 초래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를 설명해야할 이 부문에 대한 답은 결국 학문적 지도층이나 문화담당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결국 정부는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요구될 사회통합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는 결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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