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영화, 비디오, 게임 등 영상산업계의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시장에서 「문화첨병」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음반, 영화, 비디오부문 다국적 기업들은 「직배 10년」을 넘어서면서 사업이 안정화하는 등 관련시장의 중추신경으로 떠오르고 있다.
EMI, 워너뮤직, 소니뮤직, 폴리그램, BMG 등 굴지의 메이저 음반사들의 한국진출은 7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국내 음반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나, 지난 87년 관련법 개정으로 「해외 음반사의 국내 직배」가 허용되면서 합작 또는 직배형태의 한국진출이 본격화했다. 88년 7월 워너뮤직이 판매 자회사를 설립하고, 다음달인 8월 EMI가 계몽사와 70대30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EMI는 95년 12월 지분을 정리, 직배로 돌아선다. 89년 8월에는 소니뮤직이 판매 자회사, 90년4월에는 폴리그램이 성음과 80대20으로 합작회사, 91년 5월에는 BMG가 판매 자회사를 설립한다.
직배가 본격화한 이후 메이저 음반사들의 한국지역 매출액은 해마다 급증, 97년 말 기준으로 회사마다 1백80억∼2백2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힙임어 94년 34%였던 해외 음반사들의 한국 음반시장 점유율이 최근 4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음반 유통업체들의 잇따른 도산으로 상품 출고에 어려움을 겪자 메이저 음반사간 공동 물류를 추진하는 등 세계 11위 규모(4천억원대)의 한국시장 공략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영화, 비디오부문은 지난 86년 한미 통상협상이 타결되면서 외국기업들의 한국진출이 본격화했다. 영화는 거의 협상타결과 동시에 직배가 이루어졌으나 비디오는 국내 대기업들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간접 배급으로 물꼬를 텄다.
초창기 UIP/CIC만 비디오를 직배했을 뿐 MGM/UA,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워너브러더스, 브에나비스타(월트디즈니), 20세기 폭스사는 대우전자, 삼성물산, SKC 등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92년 정부가 「외국인의 음반 비디오 제작업 참여」를 허용하면서 직접 제작, 복제, 배급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컬럼비아 트라이스타가 대우와 결별하는 것을 계기로 나머지 기업들의 직배도 본격화해 현재는 국내업체와의 단순 판매 대행계약만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각 한국지사의 토착화 작업이 시작됐다. 컬럼비아 트라이스타가 한국영화에 대한 비디오 판권계약 및 제작투자를 적극 검토하고 있고, 브에나비스타는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新 로보트 태권V」 등에 대한 투자지원 및 해외배급을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분야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진출은 훨씬 늦게 시작됐다. 일본의 세가엔터프라이즈는 지난 96년12월 현대그룹과 25(세가)대75로 「현대세가」를 설립해 아케이드 게임사업을 했고, 작년 7월에는 롯데그룹과 50대50으로 자본금 1백10억원 규모의 합작회사인 「롯데세가」를 설립해 도시형 하이테크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 96년 쌍용과 50대50의 비율로 합작법인을 설립, PC용 게임 유통부문에 진출했던 EB코리아가 최근 쌍용이 지분을 철수함에 따라 독자회사로 거듭났다. PC용 게임 개발사인 대만의 소프트월드도 올 초부터 한국진출을 본격화, 전국에 50개의 대리점망을 구축하고 직판거래를 실시하고 있다. 역시 PC용 게임 개발사인 일본의 TGL도 국내 유통회사를 통한 판매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개발도 병행할 방침이다.
외국 영상관련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진출은 각 부문의 한국시장 규모가 아시아 2위에 해당하는 데다 성장 가능성이 큰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잠재력이 있는 시장에 기업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한국에 진출한 영상관련 다국적 기업들은 30∼40%대에 이르는 과도한 로열티 해외송금, 물량공세에 힘입은 과점, 국산 상품의 경쟁력 저하 등을 유발한 나머지 국내 업계와 국민으로부터 『별다른 투자없이 쉽게 돈을 벌어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한 영상관련 다국적 기업들의 대응책은 토착화. 메이저 음반사들이 가요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영화, 비디오 회사들이 한국영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수익금(로열티) 환수체제를 유지하되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로컬수익을 배가시키는 한편 한국민의 다국적 기업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을 약화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최근 들어 각 메이저 음반사들은 한국지사의 음반기획 및 상품화 결정권을 강화하고, 영화, 음반사들은 로컬투자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외국 영상관련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지역 토착화 작업이 「국산 영상상품의 해외진출 창구역할」로 연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은용, 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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