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달러 보유고 부족으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정도로 심화된 경제위기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뼈를 깎는 고통을 안겨주면서 정부 부처가 경제위기 타개책의 한 방안으로 외국인 투자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법무부 등 외국인 투자유치와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부처는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에 온힘을 쏟고 있다. 외통부는 각종 외교채널을 활용해 대한 투자유치 업체를 끌어모으고 있고 산자부는 이들 외국인의 대한 투자에 따른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경부도 외국인 투자가들에 대한 각종 세금혜택과 금융지원 방안을, 건교부는 공장부지 제공을, 법무부는 각종 법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보유기술이나 투자규모 면에서 유치의 필요성이 큰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기존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혜택까지 주겠다는 방침이다.
국내기업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M&A를 허용했는가 하면 공단입주시 세금감면 혜택은 국내기업에 대한 혜택 이상이다. 게다가 외국인투자지원센터를 설립해 투자에 따른 도움까지 주고 있다. 한마디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의사만 있다면 공장부지 선정에서부터 설립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우리 정부가 대행해 주며 첨단 업종을 투자할 경우 각종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는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외환위기의 불을 끄기 위한 것이지만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획기적인 정책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외국인 투자유치 활동은 우리나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더욱 적극적이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 불릴 정도로 시장개방과 외국인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현재 가장 많은 외국자본을 받아들인 나라가 됐다. 미국은 이 외국자본을 각종 첨단 산업과 벤처산업에 집중 투자토록 해 80년대 침체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또 「영국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비용, 비능률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던 영국도 경제난 극복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며, 이 결과로 시들어가던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외국자본을 어떤 분야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산업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세계 각국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관련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있기까지 하다. 세계적으로 지난 91년부터 96년까지 6년간 발생한 총 5백99건의 제도개혁 중 95%가 투자자유화와 관련이 있는 제도개혁이었으며 그 내용은 대부분 투자장벽 철폐 및 유인책의 마련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세계 다국적 기업의 해외 총 투자규모가 96년 말 기준으로 1조4천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95년 총 19억4천만달러(5백66건)에서 96년 32억달러(5백96건)로 65%가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69억7천만달러(6백38건)로 무려 1백17.6%나 급증했다.
그러나 이러한 폭발적인 외국인 투자 증가세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면서 급속히 냉각됐다. 올 들어 외국인 투자동향을 보면 지난 2월까지 2개월간 1백73건, 3억2천9백만달러가 투자됐는데 건수로는 작년 동기 대비 20.1% 늘었으나 금액으로는 73.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에 비해 대규모 투자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경제상황을 불안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전자, 전기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작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외국인 투자동향 자료에 따르면 전자, 전기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지난 95년 2억2천7백만달러(40건)에서 96년 4억3천5백만달러(42건)로 전년 대비 91.1%나 크게 늘었으나 97년에는 2억9천1백만달러(51건)로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특징 중 하나는 외국인의 다수지분 합작투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소수지분 합작투자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경영통제를 위해 다수지분 합작투자를 선호하는 미국, EU 등 구미기업들의 진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최근 활성화 단계에 진입했으나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선 작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GDP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을 보거나 국내 총고정자본 형성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 비중을 봐도 여타 국가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95년 GDP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중은 우리나라가 0.43%로 일본이나 독일에 비해서는 높았으나 미국 0.83%, 대만 0.57%, 영국 2.7% 등에 비해서는 낮게 나타났다. 이는 80년대 전반까지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외자도입을 규제한 것과 외국인 투자업체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 언어, 풍습상의 장벽 등의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 경제구조가 소수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형태로 인해 다국적 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는 미미하다. 재경부가 최근 발표한 국제투자 및 기술도입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62년부터 98년 2월 말 현재까지 외국인 투자는 전 산업 분야에 걸쳐 1만6백여건, 2백50여억달러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 3백억달러(1만1천여건)보다 적다. 우리나라가 최근 투자장벽 철폐와 유인책을 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의 외국인 투자유치책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외국인투자지원센터」 설립을 통한 원스톱 서비스체제 구축이다. 외국인투자지원센터는 앞으로 「외국인투자촉진법」 제정과 관련해 현재의 단순상담, 안내기능에서 투자사업 추진에 필요한 외국인 투자 신고 및 등록, 공장설립 신고, 토지, 환경, 노사관계 등 중앙부처와 자자체의 인, 허가 사항을 직접 또는 대행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또 KOTRA의 투자 관련조직이 보강되면 투자지원센터는 외국인 투자사업에 대한 모든 사항을 총괄지원하는 명실상부한 기관이 된다.
정부는 또 외자도입을 촉진하기 위해 외자도입법을 폐지하고 특별법 형식의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상반기중에 제정키로 했다. 이와 함께 외통부 통상교섭본부에 국내기업의 대외통상, 투자활동과 외국기업의 국내 영업활동 관련 애로사항을 접수, 처리하는 「통상, 투자진흥종합지원반」을 본부와 1백45개 해외공관에 설치, 운영키로 했다.
이밖에 외국인 공단을 설립하거나 공단 입주업체에 대해 각종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인 유치방안도 추진하고 있으며 첨단사업을 추진하는 외국인 투자기업에는 7년간 법인, 소득세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기업이 앞으로 설치되는 외국인 투자 자유지역에 입주할 경우 각종 세금이 7년간 전액 면제된다. 또 보유기술이나 투자규모 면에서 유치의 필요성이 큰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기존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혜택도 정부가 국회의 승인을 받아 체결하는 협약을 통해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고도기술이 수반되는 사업을 영위하는 외국인 투자기업이 투자 자유지역에 입주할 경우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 각종 세금을 7년간 완전 면제하고 그 이후 5년간은 50%씩 감면해 주기로 했다. 특히 유치의 필요성이 큰 우수 첨단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해당기업과 맺은 협약을 국회가 승인할 경우 이 법에 규정하는 사항 이외의 특혜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김병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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