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설치된 IBM 전자계산기가 24일 낮 12시30분부터 시동되었다. 이 계산기는 시가 40만달러에 해당하는 것으로 통계국은 IBM에 대해 매달 9천달러의 사용료를 내고 빌려쓰게 된 것이다. 이 전자계산기의 성능은 1초에 6만자를 읽을 수 있는 고성능으로 예를 들면 아직 세밀히 분석해보지 못한 지난 66년 인구조사 결과를 완전히 분석하자면 통계국 직원 4백50명과 2억1천만원의 돈, 그리고 14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계를 쓰면 9천만원의 돈과 시간은 1년 6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한국IBM(대표 신재철) 창립 2개월 후인 지난 67년 6월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국내 최초의 컴퓨터 「IBM 1401」시스템 도입과 성능에 대한 기사다. 이 짧은 기사는 국내 정보기술산업의 태동과 한국IBM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리는 의미있는 기록 가운데 하나다. 국내 1호 컴퓨터를 도입하던 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각국의 「전자계산기」 도입현황을 보면 미국 4만1백대, 영국 3천20대, 일본 2천6백대, 멕시코 2백대 등으로 국내현황과 비교하기는 무리였다. 그러나 「IBM 1401」 도입을 계기로 67년 당시에는 국내 약 10여군데에서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계 도입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한국IBM은 이듬해에는 통계국에 「시스템 360」을 설치하는 등 국내 컴퓨터산업의 본격적인 태동을 알렸다.
이렇게 해서 한국IBM은 30여년간 국내 컴퓨터산업의 선봉장으로서 다각적인 활동을 펼쳤다.
한국IBM은 무엇보다 먼저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하는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82년에 5명으로 출발한 국제구매사무소(IPO)를 본격 가동하면서 이듬해인 83년에 1천6백만달러의 처녀수출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 95년에 11억달러로 확대시켰다. 이를 통해 한국IBM은 지난 10년간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하는 회사로서 국내 정보산업과 함께 성장해온 한국 속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소 침체기였던 80년대 중반을 벗어나면서 한국IBM은 새로운 도약기를 만나 지난 87년에는 직원수가 창립 20년 만에 1천명이 넘게 되고 그해 5월에 처음으로 삼성SDS(옛 삼성데이타시스템)와 합작투자, 국내업계와 공동성장을 위한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93년말에 삼성SDS와 합작관계를 청산하게 되지만 이를 효시로 키스크(주), 대경컴퓨터(주), 에이시에스 엔지니어링 등 10여개사와 합작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전략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왔다.
한국IBM은 이 시기부터 국책지원사업, 학술지원사업, 사회복지지원사업, 문화지원사업 등을 활발히 추진했다. 지난 86년에는 서울아시아 경기대회를, 88년에는 1천2백40만달러 상당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그리고 1백50여명의 직원을 투입해 서울올림픽 대회와 장애자올림픽 경기대회를 공식 후원했다. 고객과 산업관련 동반자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90년들어 고객중심의 경영혁신운동을 시작하면서 이 부문에 대해서는 전사적으로 총력을 기울였다. 이것이 회사의 성장과 필수불가결한 관계에 있고 궁극적으로 회사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각종 조직을 경영환경에 맞춰 고객중심으로 개편하고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의 종합적인 해결책을 마련했다.
<이윤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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