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에서는 정보화와 관련, 열린 강의실, 가상대학, 디지털 도서관 같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교육당국에서는 많은 재원을 들여 가상대학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가상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은 집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지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강사들 역시 편한 시간대에 편한 방식으로 강의를 할 수 있다.
지금의 비좁은 강의실 교육과는 다르게 서버 컴퓨터의 능력만 뒷받침해 준다면 수백명이 몰려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런 가상 강의야말로 대형 강의실에서 마이크에 악을 써가며 소리를 질러본 강사에게는 더 바랄 수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상대학이 지향하는 바가 과연 제시된 방식으로 우리환경에서 달성될 수 있는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가장 확실한 교육은 역시 선생과 학생의 일대일 지도라고 본다. 따라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돈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을 가장 선호한다. 아무리 무서운 법을 만들어도 고액과외가 살아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하튼 이 방식은 성과에 비해 비용이 높다. 지금의 교실수업 강의방식은 비용과 효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선택의 결과다.
강의의 생명은 대화에 있다. 좋은 강의는 학생들의 건설적인 질문과 강사의 성의있는 답변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화의 핵심은 적절한 타이밍이다.
그런데 가상대학에서 실시간(?)의 질문은 불가능하다. 반나절 걸려서 전자우편으로 듣는 답변은 싱겁기 짝이 없다. 때로는 질문을 한 사람조차도 자신이 한 질문의 내용을 잊어버린다. 그렇다면 채팅 프로그램으로 강의를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70여명이 동시에 우글거리는 채팅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결국 한 교실에 모여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을 어렵게 느린 타이핑 실력을 자랑하면서까지 통신망에 매달려 허우적거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과제물을 전자우편으로 주고받는 일이 밖에서 볼 때는 우아하게 보일지 몰라도 현장에 있는 필자에게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없다. 70명의 소스 프로그램을 모두 전자우편으로 받아서 살펴보는 일이 너무 번잡해 학부수업에서는 이런 방식을 포기했다.
한정된 교육재정을 감안할 때 지금 대부분의 대학에서 시급한 것은 가상대학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교수대 학생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산술적인 대학생의 총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백만학도들이 아무리 모여서 머리띠를 두른 채 「한국형 우주왕복선 만들기 궐기대회」를 한다고 해도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단 한명의 대학생이라도 얼마나 알차게 교육을 받느냐다.
도리어 우리는 가상대학의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밤새워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개방체제, 대학원생 기숙사 건설, 강의조교들의 급료 지급, 강의교수의 확충, 질 높은 시간강사들에 대한 차원 높은 대우. 가상대학이 아닌 실세계 대학에 대한 이같은 관심과 투자가 훨씬 시급하다.
가상강의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 돈 있으면 강의실에 PC달린 고성능 영사기나 한 대씩 설치해주면 정말 좋겠다. 녹슬어가는 고속전철과 썩어가는 시화호가 가르쳐준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멋있는 일, 비싼 일, 좋은 일, 필요한 일들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부산대 전자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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