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팔리지않은 "디자인"은 유죄

노장우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원장

최근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세계 기업들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

세계시장 환경과 소비자들의 구매행태가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은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 수많은 상품 가운데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만족시켜 주는 뛰어난 디자인을 선택하는 추세다. 전체 49%의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입할 때 디자인이나 브랜드로 선택하고 있다는 한 조사결과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디자인과 이미지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명백한 이유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은 제품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됐고 디자인이 뒤떨어지는 상품은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팔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상품, 우리 기업을 생각해 보면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생산기술에 비해 디자인이 너무나 뒤떨어져 세계시장은 물론 국내에서조차 해외 유명브랜드에 밀려 시장을 잠식당하고 제값도 못받고 있다. 왜 같은 안경테를 만들고도 일본이나 이탈리아는 2백12달러까지 받는 것을 우리는 그 4분의 1 수준인 57달러에 수출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디자인 때문이다.

디자인은 단지 외관만 아름답게 치장하는 작업이 아니다. 시장수요 조사에서부터 상품기획, 생산, 마케팅, 판매까지 상품개발의 전 과정에 철저히 도입돼야 하는 핵심 경영전략이다. 이렇게 제대로 디자인하지 않으면 국내외 시장에서 승부할 수 없다.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팔리지 않는 상품을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내는 것은 지구촌 인류에게 죄를 짓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에 신경쓰지 않고 상품화된 제품은 시판돼도 불과 몇 개월 안에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해당 제품의 상품화를 위해 회사가 투자한 제품설계비, 금형비, 원료비, 생산비, 특허비용 등을 계산해 보자. 아무리 적게 잡아도 억 단위가 된다. 그뿐인가. 생산 후 곧바로 쓰레기장으로 사라질 운명을 생각하면 폐품 처리비용이 추가되는 것은 물론 자원낭비, 환경공해문제 등 그 폐악은 대단하다.

요즘 디자인 히트상품의 대명사로 떠오른 속눈썹 올리는 여성용 미용제품 「아이컬」 생산업체인 은성디벨럽먼트사의 예를 보자. 작년에 디자인을 개선한 후 연간 매출이 48억원에서 1백억원으로 뛰어오르며 월 6만∼7만개 정도를 판매하고 수출도 1천만 달러 어치나 했지만 조악했던 그전의 디자인 개발에 투자한 2억5천만원은 허공에 날린 경험이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디자인을 개발했다면 좀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고 2억5천만원이라는 비용도 충분히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팔리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기업은 물론 국가적 낭비요, 죄악에 가까운 행위다. 피할 수 있는 실패와 낭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7전8기 식으로 실패를 번복할 시간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다. 기업을 하려면 제대로 된 상품, 즉 소비자가 원하는 최고의 디자인 상품을 처음부터 만들어 팔아야 한다. 그것이 기업이 사는 길인 동시에 기업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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