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미디컴 김동성 사장(52)의 취미는 판화 모으기다. 판화수집은 곧 추억을 컬렉션하는 것이라고 김사장은 말한다.
『무명의 젊은 작가들이 그린 판화에는 그 도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한두 점씩 가져온 판화들을 쭉 펼쳐놓고 보면 그곳을 찾아갔을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곤 합니다. 재산가치때문에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난날의 추억들을 간직하려는 거죠.』
김 사장이 처음 여권을 갖게 된 것은 일반인들이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던 시절인 66년. 고려대학 2학년이었던 그가 외국에 체류할 수 있었던 것은 한일외교정상화 반대데모가 한창이던 무렵 대학생 대표들에게 외국생활을 체험시키려는 안기부의 프로그램 덕분이다. 중앙정보부 직원과 동행해 비행기에 오를 때 스튜어디스에게 내밀었던, 빛바랜 흑백사진에 붓글씨로 이름이 적혀있던 그 여권을 김사장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졸업후 MBC를 시작으로 25년동안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면서 김사장은 공산권국가와 남극, 북극을 빼놓고는 다 가봤다고 말할 정도로 해외취재를 많이 다녔다. 촬영이 없는 주말이면 조각품과 유화를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한 화랑에서 판화전시회를 구경하게 됐다. 다른 예술품처럼 비싸지도 않고 가벼워 처음엔 지인들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사곤했던 판화 모으기가 본격적인 취미로 발전하게 된 것은 황규백 화백 덕분이다. 「지구촌의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 제작차 뉴욕에 거주하는 황 화백과 1개월을 보내면서 판화의 의미와 제작과정을 자세히 알게된 것.
그동안 80여 점의 판화를 모으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70년대말쯤 귀한 판화 한 점을 구해 표구를 맡겼더니 그 그림을 전부 몇 점 만들었고 몇 번째로 찍어낸 작품인가를 작가가 연필로 적어넣은 부분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이 표식이 바로 상품가치를 말해준다는 사실을 몰랐던 표구상 주인이 낙서인 줄 알고 반갑지 않은 친절을 베풀었던 것.
또 한번은 조각가 헨리 무어의 판화를 단돈 50달러에 사놓고도 사인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름모를 작가로 여겨 친구에게 선물했다가 뒤늦게 세계적 대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판화값보다 훨씬 비싼 술을 사주고 도로 받아온 적도 있었다. 물론 20여년전 그 친구가 헨리 무어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김 사장은 집에 판화와 함께 15센티가 안되는 작은 종 2백여개와 열쇠고리 5백여개도 컬렉션해 놓고 있다. 동, 백동, 은, 사기, 나무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종은 소리가 각기 달라 그 지역의 풍속을 연상시킨다. 거실벽에 걸어놓은 열쇠고리 역시 그에게는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소품이다.
한가한 주말오후 느긋하게 식탁에 앉아 향기좋은 차를 마시면서 이 작은 소장품들을 쳐다보고 있자면 낯선 도시의 이국적인 풍경과 거기서 벌어졌던 해프닝,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들이 오버랩되면서 한동안 행복한 추억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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